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하고 있다. [SK 제공]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고대역폭메모리(HBM) 6세대 제품인 HBM4의 공급 일정을 앞당기자는 데 의견 합치를 봤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기조연설에서 소개한 젠슨 황 CEO와의 일화에 대해 “더 빨리 샘플을 낼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고 고객이 원하면 우리도 더 빨리 생각해야 한다”면서 “(공급 일정을) 당겨보자는 서로 간의 의지를 맞췄다”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CEO를 만났을 때 HBM4 공급을 6개월 당겨달라고 했다”며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보면서 ‘가능하겠냐’고 물었더니 최대한 해보겠다고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 회장은 다만 “쿼리(query)가 작동을 제대로 하느냐를 증명해 내는 여러 프로세스가 있고 그게 통과가 안 되면 별 의미가 없다. 기술이라는 게 마음먹었다고 되는 게 전혀 아니다”라면서 “정말로 공급하는지는 내년에 가서 봐야 하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그동안 SK하이닉스가 HBM3E(5세대)에서 고객 테스트를 한 번의 문제 없이 통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의 발언에는 HBM4도 무난히 퀄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SK의 향후 HBM 개발 속도에 대해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스케줄과 얘기를 (고객과) 맞춰 필요한 반도체를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 실적이 조만간 삼성전자를 추월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전제하면서도 “AI(인공지능)가 반도체 업계에 들어오면서 회사마다 여러 접근법이 있다. 다 똑같은 반도체 회사로 보고 누가 더 잘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HBM 개발과 관련해 “삼성은 저희보다 훨씬 많은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며 “AI의 물결을 삼성도 잘 타서 훨씬 더 좋은 성과를 잘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하고 있다. [SK 제공]

최 회장은 SK가 리밸런싱(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긴축·슬림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AI 분야에서는 투자가 늘어난 데 대해 “줄이는 건 줄이는 대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 줄인 부분을 어디다가는 투자하지 않겠냐”면서 “AI 쪽에 좀 더 많이 투자가 (이뤄져) 아무래도 비중도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SK는 올해 초부터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운영 개선 속도를 높이고 AI 등을 활용한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지난해 말 약 84조원에 달했던 그룹의 순차입금은 올해 3분기 말 70조원대로 줄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도 AI 분야의 보틀넥(병목현상) 해결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AI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몇 가지 보틀넥이 있다고 진단하며 글로벌 파트너와 협력해 해결책을 고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아울러 “AI의 보틀넥(병목현상) 대부분은 코스트(비용) 문제”라며 “비용을 낮추는 데에 반도체도 필요하고 에너지 솔루션도 필요하다. 데이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게 미래에 저희가 가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K의 AI 경쟁력에 대해 “AI 데이터센터의 여러 솔루션이 결국 고객의 비용을 절약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엔디비아, TSMC 등 주요 글로벌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과의 향후 협업·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비용을 얼마나 절약해 줄 수 있는지는 저희가 증명해 낼 필요가 있지만 그럴 가능성을 두고 서로 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비용을 낮출 방법을 만들면 그들도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나 사업에 베네핏(이득)이 돼 고객사로든 투자사로든 파트너링을 할 것”이라고 했다.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SK AI 서밋 2024'에서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김은희 기자]

‘함께하는 AI, 내일의 AI’를 주제로 5일까지 열리는 SK AI 서밋은 SK그룹이 전 세계 AI 대표 기업인과 학자, 전문가 등을 현장 또는 화상으로 초청해 처음 마련한 AI 심포지엄이다.

이날 찾은 ‘SK AI 서밋 2024’ 현장에는 SK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추진하고 있는 AI(인공지능) 관련 사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SK는 거대한 AI 데이터센터를 본뜬 대형 스크린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AI 플랫폼, AI 반도체, AI 서비스 등을 세부 주제로 하는 전시장을 꾸며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엔무브, SKC, SK브로드밴드, SK바이오팜, SK에너지 등 계열사의 AI 사업 현황을 소개했다.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부터 데이터센터를 위한 분산형 전력 공급 시스템과 액침 냉각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분야의 게임체이저인 유리 기판, 글로벌 통신사와 협업해 만든 텔코 LLM(거대언어모델)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특히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처리량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HBM의 차세대 제품과 액침 냉각 시스템 전용 AI 서버 실물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또 ‘텔코 엣지 AI 솔루션’이 적용된 VLAM(이미지 기반 센서 융합 측위·공간 데이터 생성 기술) 로봇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영상을 분석하는 시현도 인기 있었다.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SK AI 서밋 2024'에서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김은희 기자]

SK와 협업하는 국내외 다양한 AI 기업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됐다. 구글 클라우드와 AWS, MS, 엔디비아가 주요사로 전시에 참여했고 몰로코, 코난 테크놀로지, 가우스랩스, 람다, 펭귄 솔루션즈 등 SK와 AI 얼라이언스(동맹)을 맺고 있는 15개 기업도 AI 기술과 역량을 뽐냈다.

전시장에는 SK 주요 계열사와 협력사는 물론 삼성, LG, GS, HD현대 등 국내 다른 기업과 스타트업, 주요 연구기관 등 AI 분야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현장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SK와 SK의 협력사가 가지고 있는 AI에 대한 인사이트(통찰)를 살폈다.

컴퓨터 비전을 전공하는 경북대 최민준 학생은 “IT(정보기술) 분야 전시회를 많이 가봤는데 이번 전시회는 AI에만 집중돼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면서 “HBM 실물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고려대 강지윤 학생도 “AI 분야 유명 인사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SK AI 서밋 2024'에서 그렉 브로크만 오픈AI 회장 겸 사장에게 실시간 뇌파 분석을 통해 뇌전증 발작을 감지하는 AI(인공지능) 플랫폼 디바이스를 소개하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공식 행사에 앞서 그렉 브로크만 오픈AI 회장 겸 사장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은 SK가 AI 밸류체인 전반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 현황을 설명하며 실시간 뇌파 분석을 통해 뇌전증 발작을 감지하는 AI 플랫폼 디바이스 등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그렉 회장은 폭넓은 AI 사업 영역에 놀라워하며 세부 기술에 대해 질문하는 등 SK의 AI 역량을 눈여겨봤다는 후문이다.

이날 오후에는 AI 분야별로 글로벌 기업과 전문가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현장에서 진행됐다.

라니 보카르 마이크로소프트 총괄 부사장은 ‘미래 AI 개척을 위한 인프라 혁신’, 마크 아담스 펭귄 솔루션즈 CEO는 ‘AI 인프라’,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는 ‘원자력의 AI전력 공급’,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CEO는 ‘AI 서비스’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SK AI 서밋 2024'에서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김은희 기자]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SK AI 서밋 2024'에서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김은희 기자]

둘째 날인 5일에는 AI 인프라·반도체·서비스를 주제로 ‘K-AI 얼라이언스’,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등이 참여하는 주제 발표와 패널 토론이 이어진다.

특히 ‘국가 AI 전략’ 세션에서는 염재호 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겸 태재대 총장이 국내 AI 업계를 이끄는 박성현 리벨리온 CEO, 정신아 카카오 CEO 등과 함께 ‘AI로 발돋움하는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주제로 토론할 예정이다.

SK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AI 분야 민간, 정부, 학계의 국내외 최고 전문가와 AI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교류의 장으로 AI 생태계 형성에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SK는 미래 AI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AI 포트폴리오 역량 강화로 내실을 다지고 글로벌 AI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