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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자부심’ 시신기증...“우리가 상품인가요?”
아버지 생전 결정대로 시신 기증한 유가족
비의료인 카데바 워크숍 개최 소식에 분노
“그래도 기증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켈란젤로 해부학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이 해부 실습 수업을 듣고 있다. [‘미켈란젤로 해부학 워크숍’ 홍보영상 캡쳐]

박성현(가명) 씨는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다. 공사장을 돌아다녀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집에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거나하게 취해서 온 날이면 그와 어머니에게 간혹 주먹을 들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서먹해져만 갔다. 평범한 대화조차 하지 않는 남남인 관계로 십수 년이 흘렀다. 그러다 2021년, 방에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끙끙 앓기 시작했다. 급하게 박씨가 차를 몰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지만, 결국 아버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빠르게 진행됐다. 평생 한 번을 따뜻한 말 해준 적 없는 아버지라 눈물도 크게 나지 않았다. 다른 죽음과 다른 점은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박씨 어머니 권유로 가톨릭대에 시신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잘 몰랐지만, 아버지에게 시신 기증은 평생의 자부심이었다. 아내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시신 기증 동의서에 사인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에게 발급된 시신 기증증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지갑에 가족 사진은 없었지만, 기증증은 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동료들에게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당신도 시신 기증을 하라”며 뿌듯하게 기증증을 꺼내보였다고 한다. 박씨가 보여준 아버지의 기증증에는 투명한 유리테이프가 촘촘히 감겨있었다. 혹시라도 훼손될까 소중히 보관한 흔적이다. 얼마나 소중히 다뤘는지 때 하나 타지 않았다.

박씨의 아버지가 시신 기증을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결심이 필요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1989년, 아버지와 결혼을 하자마자 “우리가 마지막에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이라며 시신 기증을 권유했다고 한다. 의과대학 학생들이 시신이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뉴스를 본 이후다. 아버지는 주저했다. ‘생각은 옳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십수 년을 망설였다.

그런 그가 시신 기증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 아들 때문이었다. 박씨가 열여덟 살 때 안와골절을 입어, 가천대 길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됐다. 아버지는 아들의 수술을 해준 의료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 길로 망설임 없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톨릭대의 한 부속병원으로 가 시신 기증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기증을 망설이던 박씨의 외할머니까지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박씨의 어머니, 아버지, 외할머니까지 가족 모두 가톨릭대에 시신을 기증했다.

그저 의학에 도움이 되고자했던 선의. 박씨의 어머니가 가족들을 설득해 남편과 자신의 어머니까지 시신기증을 한 이유에는 그저 선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의학 발전에,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올해 6월, 힐리언스 랩이라는 교육업체가 가톨릭대에서 헬스 트레이너, 필라테스 강사 등을 대상으로 1인당 60만원을 받고 카데바 워크숍을 개최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업체는 지난해에도 두 차례 카데바 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박씨 어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박씨도 벌컥 화를 냈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본 거잖아요. 외할머니와 아버지의 시신을 기증한 뒤엔 그저 좋은 곳에 좋은 의미로 잘 쓰였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우리 외할머니가, 아버지가 의학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교보재로 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어떤 연구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학교에서는 연락도 한 번 안 왔어요. 이렇게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았는데도 너무 화가 납니다. 아니 남의 시신이라도 화가 나요.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습니까.”

박씨는 그 뒤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박씨의 어머니도 입을 뗐다. “기독교에서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나요. 한 명 한 명의 영혼을 얼마나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데.... 근데 이 한 구는 그냥 시체일 뿐이라고 생각한 거 같아요.”

그럼에도 어머니는 시신 기증이 여전히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도 아직 시신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의대생들이 있을 거잖아요. 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시신 기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아들한테 그렇게 얘기해요. 인간은 죽으면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데,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하자. 이 생각에는 변함없어요. 이번 일로 시신 기증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지영·이용경 기자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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