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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연소 억만장자’ 된 잡지사 기자 [더 비저너리-비탈릭 부테린]
3살때 엑셀 가지고 놀던 천재 소년
비트코인 기사 쓰며 가상화폐 눈떠
비트코인 대신 내놓은 이더리움 대박
27세 나이에 10억弗 부자 반열에
억만장자지만 화려한 생활 즐기진 않아
단벌 신사·패션 테러리스트로도 유명
자선단체 등 다양한 곳에 통크게 기부
러 침공때 우크라에 500만달러 전달도
‘3000弗 하회’ 가치 의심받는 이더리움
전 세계인들 ‘비트코인 넘어설까’ 주목
평소 아끼는 유니콘 티셔츠를 입은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엑스(X, 옛 트위터)]

“비트코인 관련 글을 쓰는 대가로 저에게 비트코인 주실 분이 있을까요?”

2011년, 17세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다. 몇몇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그에게 글을 써달라고 했다. 부테린이 받은 대가는 비트코인 5개. 당시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괴짜들 사이에서만 화제였던 비트코인 5개 가격은 3.5달러(약 4600원)에 불과했다. 그래도 부테린은 계속 글을 썼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루마니아 블록체인 기업가 미하이 알리시는 부테린에게 잡지 창간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2012년 ‘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부테린이 쓴 세번째 기사 ‘비트코인 소개’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어떤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가상화폐와 달리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페이팔은 거액의 수수료를 부과하지만,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키르기스스탄에서 과테말라로 돈을 보내는 것이 이웃에게 돈을 건네는 것처럼 쉽고 빠르고 저렴합니다. 본질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든 이메일과 비슷한 역할을 비트코인이 (금융시장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3년 부테린은 비트코인의 한계를 넘어설 방법을 생각했다. 부테린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썼고, 가상화폐 세계를 뒤집은 ‘이더리움 백서(Ethereum white paper)’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비트코인 찬양자’ 부테린은 어쩌다 ‘비트코인 한계론자’로 바뀌었을까. 부테린은 비트코인 매거진에서 활동하는 2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비트코인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 그럴수록 비트코인 용도가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비트코인을 있게 한 핵심 기술, 블록체인을 다른 곳에도 활용하면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94년 암호학자 닉 사보가 쓴 ‘스마트 컨트랙트: 디지털 시장을 위한 구성요소’라는 글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마트 컨트랙트란 변호사나 공증인과 같은 중개자 없이 계약을 만드는 걸 뜻한다. 스마트 컨트렉트가 가능한 전제 조건은 ‘컴퓨터 코드(Code)’다. 부테린은 블록체인 기술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블록체인은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부테린은 위키피디아에서 이 아이디어에 붙일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공상과학(SF) 용어를 검색하다 ‘에테르(Ether)’란 단어를 발견했다. 우주에 스며들어 빛을 전파하는 가상의 매질을 뜻하는 단어였다. 화폐뿐 아니라 계약서, 이메일, 투표 등 다른 용도로 언제든지 가공할 수 있는 블록체인에 이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그렇게 부테린은 2013년 11월 이더리움(Ethereum)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더리움은 가상화폐 전문가들 사이에서 금방 화제가 됐다. 부테린은 그 다음 해인 2014년 1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북미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이더리움을 공개했다. 25분짜리 발표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프로그래머이자 이더리움 창립 멤버인 찰스 호스킨스는 더 뉴요커에 “(이더리움이) 큰일을 낼 것이라 생각했다”며 “부테린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더리움을 출시하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테린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자신을 포함한 이더리움 창립자 8명을 유명 소설 ‘반지의 제왕’ 속 반지 원정대에 비유했다. 큰 뜻을 가지고 모였지만 결국 분열됐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스위스에서 모인 부테린과 이더리움 창립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입장차가 커졌다. 부테린은 이더리움 회사를 비영리재단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호스킨스는 영리기업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후원했던 조셉 루빈은 더 뉴요커에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개발자들은 경영인들의 방법을 경계했고, 경영인들은 개발자들의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발표 2년 만에 부테린은 이더리움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더리움을 출시했다. 2015년 7월 이더리움의 최초 공개 버전인 ‘프런티어’가 출시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21세. 부테린은 다니던 캐나다 워털루대를 중퇴하고 이더리움에 인생을 건 상황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테크크런치가 주관하는‘ 디스럽트 SF’ 행사에 참여한 이더리움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왼쪽)과 블록스트림 최고경영자(CEO) 오스틴 힐 [테크크런치 홈페이지]

호기심 많던 천재 소년, 비트코인에 빠지다

21세에 ‘가상화폐 강자’ 이더리움을 만든 부테린은 세 살 때 엑셀을 가지고 놀던 천재 소년이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의 아버지 드미트리 부테린은 소프트웨어 공학자였고, 어머니는 금융회사 기획자였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부테린의 천재성을 알아봤다. 드미트리 부테린은 “비탈릭은 매우 똑똑한 소년이었다”면서도 “비탈릭은 열 살 때까지 거의 말을 안 해 소통이 어려웠다. 걱정했지만 어느 순간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테린은 영재반에 들어갔다. 비디오게임을 직접 개발할 정도로 프로그래밍에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수학, 프로그래밍, 경제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세 자리 숫자를 암산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호기심을 느낄 만한 것들을 공유하곤 했다. 드미트리 부테린은 포춘지에 “비탈릭이 호기심이 많다는 사실이 기뻤다”며 “‘비탈릭, 이걸 봐. 재밌는 걸 찾았는데 너도 흥미로워 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일이 즐거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도 아버지가 소개한 ‘호기심 대상’ 중 하나였다. 2011년 아버지를 통해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의 매력에 빠졌다. 당시 부테린은 자신이 키우는 게임 캐릭터 능력이 줄어들어 좌절한 상태였다. 그는 “월드 오브 크래프트 회사가 내 캐릭터 능력을 떨어트리면서 중앙집중화된 시스템의 위험과 불공정을 생각하게 됐다”며 “비트코인의 탈중앙적인 시스템이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2013년 이더리움 백서를 만들었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백서를 보여줬다. 드미트리 부테린은 “백서를 보고 정말 감명을 받았다. 매우 의미가 있었다”며 “복잡한 것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건 비탈릭의 재능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어머니 나탈리아 아멜린도 아들의 이더리움 모델을 지지하고 있다. 2014년부터 아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아멜린은 이더리움 기반 레이어2(L2) 메티스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고, 비영리 교육단체 크립토칙스를 공동 설립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아멜린은 캐나다, 파키스탄 등을 비롯해 전 세계 학생과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교육을 하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미하이 알리시와 만든 비트코인 잡지‘ 비트코인 매거진’ 2012년 5월 창간호 [비트코인 매거진]

단벌 신사·패션 테러리스트지만…기부는 통크게

이더리움은 2021년 개당 3400달러(약 454만원)를 돌파하며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가상화폐)에 등극한다.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의 재산도 10억달러(약 1조 3380억원)를 돌파했다. 당시 그는 공개된 지갑에만 이더리움 33만 5000개를 보유했다. 현재는 24만개의 이더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포브스에 따르면 당시 그는 27세의 나이로 최연소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고 부테린이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책 ‘이더리움 억만장자’에 따르면 부테린은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을 사기도 하고, 편안한 에어비앤비에 사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정도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떠났다가 가끔 친구 집에서 잠을 잔다. 작은 가방에 노트북과 옷, 각종 케이블, 이동형 저장장치(USB)를 들고 다닌다. 그는 “40리터 정도의 가방이 있으면 15㎞를 걸을 수 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부테린은 단벌 신사이자 ‘패션 테러리스트’로 유명하다. 부테린의 트레이드 마크는 회색 목폴라에 검정색 바지, 녹색 양말에 레이스가 달린 아디다스 운동화다. 하지만 그의 ‘최애 의상’은 유니콘과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다. 로봇, 유니콘 무지개 등 부테린이 좋아하는 것들이 담긴 이 티셔츠 디자인이 이더리움의 마스코트가 됐다. 부테린은 호텔 대신 캐나다 토론토, 미국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중국 상하이, 대만 타이베이 등 친구들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지기도 한다고 한다.

부테린은 람보르기니 같은 고급 자동차에도 관심이 없다. 비서도 없이 혼자 다닌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왼손에 스마트폰을 쥔 채 어두운 색 반팔 티셔츠, 반바지 차림으로 판교 거리를 걸었다. 주변에 지인이나 경호원 없이 카페에서 커피 5잔을 주문해서 마셨다.

그런 그가 화끈하게 돈을 쓰는 데는 기부다. 그는 생물·의학 연구개발(R&D), 자선단체 등 다양한 곳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부테린은 동물 복지지금으로 53만달러(약 7억2000만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기부했다.

그는 가상자산 이용자들이 각종 동물 관련 밈(meme·인터넷에서 패러디·재창작의 소재가 되며 유행하는 사진·이미지·영상) 코인을 보내면 매년 그 코인을 기부 한다. 2021년에는 대표적인 ‘밈 코인’ 시바이누 코인에 이더리움을 더해 총 10억달러(당시 약 1조 1280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부테린이 기부한 가상화폐는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위기에 빠진 인도의 ‘코비드-크립토’ 구제 기금에 전달됐다.

부테린은 개인 자산을 불리기 위해 이더리움을 팔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부테린은 영리 목적으로 이더리움을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지난 2018년 이후로 수익금을 위해 보유 자산을 팔지 않고 보관 중이다”라며 “현재까지 매도된 이더리움은 가치 있다고 판단된 생태계와 자선 단체에 쓰였다”고 말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는 우크라이나에 500만달러(약 61억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기부하기도 했다. 블로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의사를 밝힌 특별군사작전을 발표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엑스에 “전쟁은 범죄”라고 적었다.

그는 “이더리움은 중립적이지만, 나 개인은 그렇지 않다”며 “푸틴의 결정에 매우 화가 났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전쟁을 택했는데, 이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 모두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맹비난했다.

202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더리움 행사에서 이더리움 창립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녹색 공룡 옷을 입고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가치 의심받는 이더리움, 비트코인 넘을 수 있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더리움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거래를 승인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8일 간 빠져나간 이더리움 ETF 자금만 총 1억1200만 달러(약 1497억1000만원)에 달한다.

이더리움 ETF가 나왔을 당시 금융 감독 단체 ‘더 나은 시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더리움은 극도로 변동성이 큰 자산이다. 이더리움 네트워크 자체에는 사기와 조작에 취약한 기능이 있다”며 “SEC는 투자자와 시장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도 이더리움 가격은 예전만 못하다. 지난달 3000달러(약 400만원) 밑으로 떨어진 이더리움은 5일 기준 2600달러(약 347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이더리움 거래 수는 2727만 건으로 2020년 5월 이후 최소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이더리움 보유량을 줄이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이 봤을 때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달리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 ‘디지털 금’이라는 확실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과 달리 이더리움은 가상화폐 1인자가 아니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인공지능(AI) 열풍 등으로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비트코인처럼 발행량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이다. 비트코인 총 발행량은 2100만개로 고정됐지만, 이더리움은 유통 중인 화폐 수가 증가해 공급량이 변하고 있다. 리서치회사 미사리는 보고서에서 “이더리움이 확장 가능한 서비스와 자산 사이에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더리움 기술을 다른 일에 접목시키기 위해 기존 이더리움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했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에 다른 체인을 연결하는 레이어2(L2)라는 개념을 통해 블록체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블록체인은 확장(Scalability),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보안(Security)이라는 트릴레마(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3가지 문제)가 있는데, 레이어2는 탈중앙화와 보안을 유지한 채 거래량을 늘리고자 한다.

이더리움 홈페이지에는 레이어2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레이어2 소개글에 따르면 기존의 이더리움이 1초당 15건의 거래를 처리한다. 그래서 거래가 늘어날 경우 수수료가 늘어난다. 반면, 레이어2는 다른 체인을 연결해 거래를 처리하므로 수수료가 낮아진다.

부테린은 자신의 엑스에 “지난 1년간 이더리움의 검열 및 중앙화에 대한 우려가 현저히 낮아졌다”며 “이더리움은 금융이 아니고 탈중앙화된 독립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그저 돈 많은 ‘가상화폐 억만장자’가 아닌 전례 없는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주도하는 인물로 부테린은 성장할 수 있을까. 부테린을 “크립토 기반의 미래 외에는 특별히 바라는 게 없는 금욕주의자”로 설명한 네이션 슈나이더 콜로라도대 교수는 부테린의 책 ‘지분증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더리움은 양면적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유토피아부터 디스토피아까지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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