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은 수도행위 같은 것. 중요한 건 몰입”
반효진 선수와 대구체육고등학교 김병은 코치. [김병은 코치 제공] |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정호원 수습기자]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한국 사격 반효진(16·대구체고) 앞으로 축하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체육고등학교에서 반효진을 2년 간 지도해 온 김병은 코치도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반효진을 ‘강심장’이라고 표현했다.
김 코치는 31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사격은 미세한 맥박만으로도 총구가 덜컥덜컥 흔들린다”며 “효진이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못 버티는 상황을 견뎌냈다”고 칭찬했다.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으로 사격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 코치가 전한 ‘사격의 세계’를 정리했다.
김 코치는 사격을 ‘재미있는 종목’이라고 보는 건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선수가 홀로 긴 시간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도승이 수행하는 것에 비유했다.
10m 공기소총 표적지. 과녁 지름은 3cm이며, 만점은 0.2mm에 불과하다. [올림픽 홈페이지 캡처] |
사격은 긴 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스포츠다. 본선 75분 동안 60발의 총을 쏘면 누적 점수에 따라 상위 8명이 결선에 진출한다. 결선에 오른 선수들이 차례로 총을 쏜다. 점수가 낮은 선수부터 탈락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로(射路)에 사수는 줄고, 엄청난 긴장과 중압감이 빈자리를 메운다. 마지막까지 남은 두 선수는 랭킹 매치로 1, 2등을 결정짓는다.
공기소총으로 과녁을 맞추는 건, 총으로 샤프심을 맞히는 것과 같다. 10m 공기소총 과녁 지름은 3㎝다. 10점 원지름은 0.5㎜이고, 만점 10.9점은 0.2㎜ 점에 불과하다. 사격 선수들은 0.1점을 두고 승부수를 던진다.
반효진은 결승에서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23번째 격발에 9.9점, 24번째 격발에 9.6점을 기록하며 접전을 벌이던 황위팅 선수에게 동점을 허락했다. 반효진은 “그렇게 크게 (과녁 밖으로) 빠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코치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떨 수밖에 없다”면서도 “떨려도 쏴야 한다. 중요한 건 몰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걸 ‘사격 행위’라고 표현했다. 한 발, 한 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몰입해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다.
사격 반효진이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CNTS 사격장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승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열린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파리=이상섭 기자] |
사격을 가만히 서서 총만 쏘면 되는 종목이라고 보는 건 오해다. 무게가 5kg에 달하는 공기 소총을 허리를 꺾은 자세로 받치면서, 호흡과 생각을 정돈한 채 평온한 격발을 하려면 사격·비사격 종합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총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연습하고 코어 운동과 스트레칭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기초를 단련한다.
김 코치는 “사격 중 조금만 잡생각을 해도 자세가 흐트러진다”며 “1시간 15분 동안 60발을 혼자 반복적으로 쏴야하기 때문에 선수 스스로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위험한 총기를 다루는 만큼 여러가지 제약도 따른다. 개인 장비는 학교 무기고에서 보관하며 관할 경찰서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점검한다.
시합장에 가거나 훈련을 위해 장비를 옮겨야 한다면 미리 관할 경찰서에 협조 공문을 보낸다. 파리 올림픽처럼 해외로 이동할 땐 대한사격연맹이 인천공항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하고 공항에서 1시간 반 이상 대기하며 꼼꼼한 점검을 받는다. 공항에서 확인이 완료됐다는 세관 스티커를 붙여줘야 비행기에 싣고 이륙할 수 있다.
예민한 장비이기 때문에 운반도 쉽지 않다. 10kg에 달하는 가방 안엔 사격복, 사격화, 장갑, 장비 받침대, 연지탄 등이 들어간다. 김 코치는 “총기 가방에 되도록 충격이 가지 않아야 한다”며 “총기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운전할 때 과속 방지턱도 조심히 넘어가야 된다”고 했다.
‘사격 종목이 받는 오해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코치는 “사격을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이 막연히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며 “홀로 모든 것을 판단하며 1시간 30분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행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강조했다.
‘수행’과 같은 고된 훈련으로 다진 반효진의 강철 체력과 멘털은 한국에 100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태어난 지 16년 10개월 19일이 된 반효진은 ‘여름올림픽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notstrong@heraldcorp.comw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