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3년만에 올림픽 무대서 금빛 총성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여갑순 [연합] |
사격 반효진이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CNTS 사격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승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눈가를 훔치고있다. 샤토루=이상섭 기자 |
한국 사격 반효진(16·대구체고)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하계 대회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우뚝 서면서 ‘여고생 명사수 신화’를 이어갔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에서 유독 고교생 여자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여고생 소총 명사수 계보’가 생길 정도다. 그 시작은 ‘사격 레전드’로 불리는 여갑순이다. 여갑순은 고교 3학년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강초현(당시 고3)이 계보를 이었다. 2024년의 반효진은 선배 사수들의 뒤를 이었다.
특히 여갑순과는 걸어온 길까지 닮았다. 반효진은 총을 잡은 지 3년 만에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갑순도 마찬가지다. 여갑순은 당시 한국 사격 대표팀 중 유일한 고교생 신분이었다. 사격 입문 3년 만인 1991년 서울체고 1학년 때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2학년 만 18세의 나이로 올림픽에 출전해 ‘금빛 총성’을 울렸다.
아무도 메달을 예상하지 못한 깜짝 금메달리스트라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반효진의 파리 올림픽 우승을 점친 이는 없었다. 단 3년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할 정도로 기량은 뛰어났으나, 급격히 성장했기에 기복이 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효진은 ‘강철 멘탈’을 보여주면서 사격 천재라 불리는 중국의 황위팅 선수를 제쳤다. 결선에서 쏜 24발 사격 중에 9점대(10.9점 만점)에 그친 건 단 3발뿐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10m 공기소총 종목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는 세계 최고 명사수로 불리던 불가리아의 베셀라 레체바였다. 아무도 사격 대표팀 막내가, 그것도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교생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여갑순의 금메달은 바르셀로나 대회 전체 1호 금메달이었다. 깜짝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반효진과 여갑순은 사격을 두고 ‘운명’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효진은 ‘사격을 잘할 것 같다’는 친구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 때 사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를 마주하면서 쉽게 엘리트 선수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다. 그의 부모님은 ‘공부는 어중간해도 되지만, 운동은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며 딸을 나무랐다. 딸은 실력으로 완고했던 부모님의 마음을 허물었다. 소총을 처음 잡고 두 달 만에 나간 대구광역시장배에서 덜컥 우승한 것이다.
여갑순도 우연한 기회로 총을 잡았다. 서울 청량중학교 재학 시절, 특별활동 시간을 계기로 사격에 발을 들였다. 처음부터 사격의 재미를 강렬하게 느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입문하고 두 달까지 몰래 훈련에 참가할 정도였다. 이후 여갑순은 부모님에게 ‘태극마크를 달겠다’고 선포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사격 입문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여갑순은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반효진이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활동하던 올해 1월, 여갑순은 대표팀 후보 선수 전임 감독으로 근무하면서 반효진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여갑순이 반효진을 새로운 ‘여고생 명사수’로 길러내면서 사격계에서는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뤘다는 평이 나온다. 안효정 기자·차민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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