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근원 ‘예지력’의 기원·잠재력등 역설
기후위기서 지구 지킬 열쇠도 ‘인간 정신’
시간의 지배자/토머스 서든도프· 조너선 레드쇼· 애덤 벌리 공저/조음영 옮김/디플롯 |
‘지구 정복자’ 인류의 역사는 사실 지구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짧다. 46억년 전 태어난 지구에 생명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40억년 전. 그 이후인 약 600만년 전이나 돼야 인류가 이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한 달로 축소해본다면 인간이 침팬지로부터 갈라져 나온 건 불과 1시간 전,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는 2분 전에 등장하는 셈이다.
짧은 진화의 역사에도 인류가 다른 종(種)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토머스 서든도프 호주 퀸즐랜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의 신간 ‘시간의 지배자’에서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예지력(foresight)’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만이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대비하는, 이른바 예지력이 있기 때문에 종의 지배자는 물론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놀라운 진보와 격변의 시대로 데려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일종의 타임머신 같아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한 번 더 경험하고,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없어도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미래의 위험과 기회를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이른바 ‘멘털 타임머신’인 예지력이 인류에게 강력한 도구로 작용해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옛날 기후변화로 아프리카에서 숲이 사라지면서 인류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왔지만, 사자와 같은 포식자에 먹혀 멸종하지 않은 것은 바로 예지력 때문이었다. 인류가 천체를 관측해 달력을 만들고, 시간 개념을 만든 시계와 과거를 기록하는 문자를 발명한 것도 다 미래를 여행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물론 인간의 예지력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이 가진 가상의 타임머신은 보통 살면서 겪었던 여러 사건을 다시 방문하고 이를 서사적으로 연결해 연속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예지력의 기반이 되는 우리의 기억은 과거 경험의 기록이라기보다 적극적인 재구성에 가까워 불안정하다. 특히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데 예지력을 발휘하면 공동의 이익과 다가올 세대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 팬데믹, 생물의 다양성 감소 등 인류가 처한 현 위기 역시 인간의 불안전한 예지력으로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의 힘은 예지력 그 자체이기보다 자신이 가진 예지력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예지력의 장단점을 알기에 천체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날씨, 지진 등에 대한 사전경보시스템을 만들었는데도 혹여 있을 수 있는 변수나 사고에 대비한 방재 시스템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비록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 외의 영장류는 대다수 멸종하고 자연은 평형 상태가 뒤흔들리며 예측 가능한 타임라인이 무척 절망적이지만, 인간이 ‘멘털 타임머신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말처럼 “이제 수십억 년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행성은 먼 미래에서 올 위험을 예상하는 보초병과 (중략) 그 위험에 대처할 계획으로 보호받는다. 지구는 마침내 자체적인 신경계를 키워냈다.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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