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으로 연극에 첫 도전하는 가수 겸 배우 루나는 “매일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라고 했다. 임세준 기자

장장 170분에 달하는 연극 ‘햄릿’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1시 30분.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치면 자정을 훌쩍 넘긴다. 그때부터 루나는 ‘오필리어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짧게 끝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한 시간 이상 오필리어를 놓지 않는다.

그는 “매일 무대에서 기술적으로 어떤 것을 잘 됐고, 무엇이 더 나았는지를 살핀다”며 “오필리어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될만한 음악도 듣는다”고 말했다.

늘 그랬듯 가수 겸 배우 루나(31)는 이번에도 열심이다. 연습생을 시작한 열세 살 때부터 2세대 K-팝 그룹 f(x) 시절을 지나 지금까지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다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달랐다. 첫 연극 ‘햄릿’을 만나서다.

어느덧 공연 한 달차. 매일 무대에서 사랑하고 아파하며 울부짖는다. 최근 공연에 한창인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난 루나는 “매일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라고 했다.

K-팝 그룹 출신이다 보니 ‘노래’가 없는 그의 연기에는 물음표가 따라왔다. 하지만 루나에게 ‘햄릿’의 오필리어는 꿈이었다. 대학에서 연기(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를 전공한 그는 “현대극보다는 고전에 더 관심이 많았고, 오필리어는 여배우라면 무조건 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오필리어가 되기 위해 루나는 매일 슬픔의 강으로 더 깊이 뛰어 든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연습 과정은 그에게 만만치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울었다”며 “그래도 목표는 단 하나, ‘이걸 무조건 해내자’, ‘표현해내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극중 오필리어는 순수한 사랑에 빠지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자, 광증으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한 없는 슬픔 속에 빠지는 비극적 여주인공이랄까. 짧고 강력한 인물을 그리기 위해 그는 모범생처럼 파고 들었다. ‘광증’의 실체를 알려고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가 쓴 ‘트라우마 사전’을 탐독했고,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도 받았다.

그는 “사실 오필리어의 감성을 따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게도 (죽음에 대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다만 그것을 연기로서 캐릭터에 녹여내고 (관객들을) 설득하느냐는 점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배우로서 자책이 들던 순간도 있었다. 손진책 연출가로부터 “너의 슬픔이 그 정도냐”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다. 그는 “매일 울고 또 울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 때 정신을 바짝 차렸다”며 웃었다.

첫 도전은 성공적이다. 대배우들의 ‘연기 차력쇼’와 같은 무대에서 루나는 주눅들지 않고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것. 특히나 전무송(83), 이호재(83), 박정자(82), 손숙(80), 김재건(77), 정동환(75), 김성녀(74), 남명렬(65), 박지일(64) 등 기라성 같은 대선배들의 존재감과 연극계 거장 손진책 연출가의 호된 트레이닝으로 ‘햄릿’ 현장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루나는 하지만 “선생님들이 많은 연극이라고 부담은 없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연습생을 시작했고, 할머니와 함께 자란 환경 덕이다.

루나는 지난 15년간 K-팝 그룹에서 배우로 매순간 바쁜 삶을 살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치열했고, 참 힘든 20대를 보냈는데 30대가 된 지금은 내 인생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