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박수근 작품 위작 논란 '시끌'
미술관 측 韓 전문가 불러 특별 감정
논란 작품 모두 위작·다른 작품도 가능성↑
라크마의 ‘한국의 보물들’ 전시에 박수근 작품으로 표기된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아래), ‘와이키키 해변’(위). 두 작품 모두 위작 의견이 나왔다. [독자 제공·헤럴드DB]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미국 서부 최대 박물관에서 5개월여 동안 전시한 이중섭·박수근 그림이 사실 위작이었다는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다. 함께 전시된 조선시대 회화와 도자 등 다른 작품들 역시 위작 의혹이 제기됐다. 이는 한국 미술 작품의 이해도 및 진위 여부에 대한 서구권의 이해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미술관 측은 잘못을 인정하고 전시 도록 발행을 취소할 예정이다.
1일 미술계 등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라크마)에서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열렸던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캐머런 장 컬렉션’에 출품된 이중섭·박수근의 그림 총 4점(각 2점)이 위작이라는 공식 감정 평가가 나왔다. 이외에도 고미술로 나온 이인문과 김명국의 그림, 청자와 백자 대부분이 모조품으로 판단됐다.
사실 전시 초기부터 작품 중 일부가 위작으로 보인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미술관은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 위작 논란이 보도되고, 국내 관련 기관에서 미술관 측에 질의서를 보내오자 전시가 열린 지 5개월 가량 지난 지난달 26일 뒤늦게서야 한국 전문가를 초청, 특별 감정을 위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 수석연구원,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미술관이 전시 기간 중에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감별하기 위해 한국 전문가를 직접 불러들인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전시장 벽면(왼쪽)에 전시된 도자기 대부분이 20세기 중반 이후 만들어진 모조품으로 판단됐다. [독자 제공] |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 전문가들은 이중섭·박수근 작품으로 출품된 각 2점에 대해 위작 의견을 내놨다. 라크마 전시에 나온 이중섭의 ‘기어오르는 아이들’은 1950년대 이중섭의 세로로 된 그림 원작을 가로로 바꿔 그린 복제본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도 위작 의견이 제시됐다. 황소의 눈을 표현하는 작가 특유의 화풍이 다를 뿐 아니라 ‘중섭’ 서명의 ‘ㅅ’ 자 획마저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와이키키 해변’에 대해서도 진작과 다르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만 사진 등을 본따 서명 없는 주문용 상품 그림을 박수근이 제작했을 가능성은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나왔다.
이인문과 김명국 작품으로 나온 그림은 심지어 중국 그림이었으며, 전시된 청자와 백자 대부분이 20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모조품인 것으로 감별됐다.
라크마의 ‘한국의 보물들’ 전시 출품작에 위작 의혹이 일자 미술관 측은 한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별 감정을 위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이 발언을 하는 모습.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
이에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은 “전시 도록 발행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들의 사전 감별을 검토하지 않은데 대해서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로 시작된 전시”라고 말했다.
한편 라크마는 지난 2021년 한국계 미국인 체스터 장과 그의 아들 캐머런 장으로부터 회화·도자·수석 등 100점을 기증받았다. 이 중 35점을 선정해 전시를 열었다. 전시는 지난달 30일 일정대로 막을 내렸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