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3인 작가 ‘기후·경제 관계’ 고찰
덴마크 3인조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 [국제갤러리]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Save Your Skin’(남들은 죽든 말든 너는 화를 면해라), ‘Make a Killing’(순식간에 떼돈을 벌어라), ‘Hold Your Tongue’(잠자코 입 닥치고 있어라)
전시장에 들어서자 거침없이 쓰인 짙은 분홍빛 네온사인이 불을 밝힌다. 폭주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의 이기심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문구다. 각 문구는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벽에 설치됐는데, 그 형상이 마치 서로를 갉아먹으며 증식해나가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덴마크 3인조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의 전시 ‘Fish & Chips(피시 앤드 칩스)’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를 연 뒤 5년 만에 갖는 한국 전시다. 수퍼플렉스는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슨이 1993년에 설립한 작가 그룹이다.
나란히 설치된 LED 작품(2024). [국제갤러리] |
지배적인 경제학의 논리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온 수퍼플렉스는 이번 전시에서도 기후와 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무엇보다 페인팅부터 조각,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이 한데 모여 ‘관계항’을 만들어내는 점이 흥미롭다. 전시장에서 만난 수퍼플렉스는 “다른 세계를 향한 일종의 접점(interface)이나 관문(portal)로 여기고 (이번 전시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퍼플렉스는 “세상의 종말보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작품 의도를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신용카드를 묘사한 작품들이 그저 단색화처럼 고요히 벽에 줄줄이 내걸렸다. 한 켠에는 세계적 금융 패권을 장악한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 등 거대 투자은행(IB)의 본사 건물을 본 따 만든 화분이 놓였는데, 그 안에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인 ‘협죽도’가 심겨져 의미심장하다. 환각 성분이 있는 식물을 통해 금융 거래의 중독적인 면모를 고발하는 은유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협죽도가 심겨진 ‘투자은행 화분’ 연작(2019)과 벽에 걸린 ‘Chips’(2023). [국제갤러리] |
칠흑 같이 어두운 심해를 표현한 공간으로 인터랙티브 영상 작품 ‘As Close AS We Get’(2024)이 중앙 뒷 편으로 있다. [국제갤러리] |
마지막 전시장에 다다르면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수직 이동’을 하게 된 인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거대한 LED 화면에서 작동되는 인터랙티브 영상이다. 화면 속 수중 해파리의 친척 뻘인 해양 생명체 ‘사이포노포어’가 관람객의 동작에 반응해 움직인다. 관람객이 사이포노포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해양 생명체도 큰 소리를 내며 더 가까이 다가오는 식이다. 수퍼플렉스는 “인간으로서 다른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가만히 서서 관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4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주제로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바 있다. ‘외국인들이여, 덴마크인들과 함께 있도록 우리만 남겨두지 말아요’(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라는 글씨가 새겨진 포스터 작품이 지난 20여 년간 어떻게 생명력을 갖고 도심 곳곳에 드러났는 지를 담은 영상을 설치했다. 국제갤러리 전시는 7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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