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은 왕실용 백자·불상 등 배치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구름과 용 무늬 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곧게 세워진 입구 부분,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 아래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드는 몸체…. 키가 큰 이 항아리에, 용 중에서도 발톱이 다섯 개나 있는 ‘전설의 용’ 오자룡이 푸른 코발트색 안료로 그려져 있다. 그 너머로는 구름이 넘실댄다. 왕실 최고 수준의 도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찬란한 광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소장했던 ‘용무늬 청화백자 항아리’가 미국 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uston·MFAH)에 전시돼 관람객과 만난다. 휴스턴미술관 캐럴라인 와이스 로 전시관 1층에 있는 한국실이 새로 단장해 재개관하면서다. 2007년부터 미국 남서부 지역 최초로 한국실을 운영해 온 휴스턴미술관은 소장품만 7만여 점에 달하는 미국 남부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2019년 기준 연간 관람객 수는 약 125만명이다.
휴스턴미술관 전경.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구름과 용 무늬 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 |
새로 문을 연 178.5㎡(54여평) 규모 한국실은 조선시대 의례와 신앙, 생활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도자와 목가구, 불상 등 35점으로 채워졌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31점) 대부분은 왕실용 도자기 제작소인 관요에서 만들어진 최고 수준의 백자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의 개괄적인 역사를 두루 보여주는 기존 전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조선시대에 집중한 ‘주제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개편된 한국실은 현대적 미감으로 조화롭게 이어지는 조선의 미술과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휴스턴미술관 소장품인 이기조 작가의 달항아리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조선시대 불상 한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황란 작가의 조선 궁궐을 재해석한 현대 작품과 함께 금강산을 그린 조선시대 병풍 ‘칠보산도’를 배경으로 한 ‘호랑이 다리 모양의 소반’을 만날 수 있다.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났을 때 태(胎)를 보관하고 기록했던 태 항아리와 태지 접시를 비롯해 연적·벼루 등 조선시대 문인들의 취향이 담긴 전시품도 한국관에 배치됐다.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목조여래좌상’. [국립중앙박물관] |
재개관한 휴스턴미술관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
박병래 선생의 기증품 ‘백자 제기’. [국립중앙박물관] |
특히 이번 재개관한 한국실에서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을 비롯해 1936년 천주교 경성교구가 설립한 성모병원의 초대원장이기도 했던 수정 박병래(1903~1974) 선생, 1만여 점에 달하는 수집품을 모두 기증한 이홍근(1900~1980) 선생의 애장품 11점이 전시됐다.
한국실의 주요 유물은 2026년 3월까지 약 2년 간 대여된다. 휴스턴미술관은 추후 대중 강연, 영화 상영 프로젝트 등 각종 프로그램을 열어 한국 문화를 현지에 소개할 예정이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휴스턴미술관이 기존과 차별화되는 다양한 교류 사업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한국 문화 홍보와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