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년 넘게 이어진 은행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은행산업의 진입문턱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대구·경북에 기반을 둔 국내 최초 지방 은행인 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전환하고, 지방 은행, 인터넷 전문은행, 특화 전문은행을 늘려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메기’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능력 있는 사업자면 언제든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先)신청-후(後)심사’로 인허가정책을 전면 전환하기로 했다. 5일 금융당국이 내놓은 ‘은행권 경쟁촉진화 방안’의 골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은행산업 과점 폐해가 크다.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5개월 만이다.
시중은행이 새로 생기는 것은 1992년 평화은행 이후 31년 만이다. 대구은행이 영업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면 지방은행이 없었던 대전·강원과 5대 은행이 장악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경쟁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55년의 업력을 가진 대구은행의 대출 규모(51조원)는 외국계 시중은행인 SC제일은행(45조원)보다 크다. 최소 자본금(1000억원), 지배구조(산업자본 보유한도 4%) 등 지방은행 중 시중은행 전환조건을 사실상 유일하게 충족한다.
하지만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구은행의 지난해 말 지점 수는 202개로, KB국민은행(856개)의 4분의 1도 안 된다. 경상도 외 지역의 지점 수는 9개에 불과하다. 자본금이나 대출 규모도 5대 시중은행에 상대가 안 된다. 고만고만한 플레이어를 다시 투입한다고 은행권 판도가 흔들리고 경쟁이 촉진될 것이란 기대는 헛된 희망이 될 수 있다.
6년 전 출범한 인터넷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도 처음에는 경쟁과 혁신의 파문을 일으킬 메기로 불리며 한껏 기대를 모았다. 소액 신용대출 등 소비자의 선택권은 늘었고, 모바일뱅킹은 더 편리해졌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판을 흔들 금융상품은 눈에 띄지 않았고, 5대 은행의 독과점구조는 더 공고해졌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인터넷은행 3곳의 은행권 예금과 대출 점유율은 각각 2.6%, 2%에 그친다. 5대 은행은 이 비율이 각각 74.1%, 63.5%나 된다. 특히 지난해 이자이익은 36조3500억원으로, 전년보다 20% 이상 늘었다.
메기는 미꾸라지들이 뛰노는 곳에 풀어야 효과가 있다. 그런데 지금 5대 은행은 미꾸라지가 아니고 덩치 큰 고래들이다. 메기가 일으키는 파장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제한) 완화와 같은 실효적 방안이 동원되지 않는 한 ‘은행 카르텔’을 깨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