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긴축 노력이 나름 효과를 발휘하며 물가의 방향은 우하향하고 있다. 원유 및 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서비스물가의 경직성을 고려하면 ‘과연 언제 코로나 이전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기준금리 인상이 얼마나 더 필요한건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한 풀 꺾인 것은 사실이다.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적어도 올해 하반기 중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일단락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무역수지도 드디어 지난 6월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래는 장밋빛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면 그동안 미뤄놓았던 청구서들이 하나둘 밀려오는 상황이다. 우선 코로나기간 보증 확대를 기반으로 한 자영업자 대출 급증이 인건비 상승과 물가급등, 금리상승, 금융 지원 종료 등이 맞물리며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시내 전광판에 나오는 새마을금고 광고 [연합] |
코로나 전후 3년간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순증 규모가 127조원에서 237조원으로 급증했고, 재무 상황이 취약한 다중채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104조원에 달하고 있는 점은 향후 추가적인 부실과 연체율 상승을 예고하는 근거로 꼽힌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점을 고려할 때 코로나기간 중소기업들이 금융 지원의 혜택으로 약 2.70%의 금리 수혜를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기업이 부실위험을 모면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시중금리 상승과 금융 지원 종결로 작년 하반기 이후 비용이 급증하고 있어 기업들의 재무 상황은 악화됐다. 한계기업 비중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금융 지원 없이 실제 위험을 반영한 이자율을 적용할 경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취약 기업의 금융권 여신 비중이 4~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점은 향후 금융권에도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부동산시장은 이미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에서 커다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부동산시장을 활용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과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정책, 주거 안정 지원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의 투기 수단 전용, 졸속 도입된 임대차 3법 등이 맞물려 폭등했던 주택 가격이 금리 급등으로 급격한 조정을 맞고 있다. 가격 급락의 후유증으로 사업이 좌초되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 개발금융의 부실화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주택시장 내 임대인·임차인 간 가격 급락에 따른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장기간 초호황을 누려왔던 부동산 개발금융 시장도 금융 환경 급변으로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주택시장뿐만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과 관련된 프로젝트파이낸싱자금의 부실 가능성 증대는 단기간 내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축,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으로 자재비, 인건비 등 건설원가는 늘어난 반면 주거 분양 및 상업용 부동산 투자가 위축되며 개발사업의 수익성이 하락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어 금융기관의 보수적 대출 태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개발사업 초기 단계인 브리지론의 규모가 30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사업성 악화에 따른 본PF 조달 실패로 브리지론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는 점도 금융권에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2700조원에 달하는 부동산금융 익스포저가 가계와 기업, 금융 부문 전체에 실타래처럼 엮여 있다는 점이다. 과거 부동산 PF대출 관련 대규모 부실로 위험 회피 행태가 심화된 상황에서 자본시장과 PF대출 간 연계성이 커진 점,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취약한 비은행권의 익스포저가 확대된 점을 고려할 때 부동산 기업금융의 부실 위험 증대는 금융 시스템 안정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정부 재정에서도 비정상의 정상화가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기간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취약 부문을 지원하며 팬데믹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반대급부로 국가부채 비율이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코로나 당시와 같은 급격한 재정지출 확대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금리 급등에 따른 부담마저 가중시키니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재정건전화 노력을 강화키로 하며 재정 부문의 지출 구조조정과 함께 예산 집행을 효율화하는 긴축 건전재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재정건전화 노력은 통화당국의 금융 긴축, 가계 부문의 디레버리징과 맞물리며 또 다른 파열음을 야기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저금리와 재정에 가려져 있던 각종 문제점이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속속 드러날 것이다. 물론 경제 전체적으로 비효율성을 덜어내며 우리 경제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체력이 저하된 경제 주체들에는 감내하기 힘든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이를 대응할 정교한 설계와 추진력 그리고 강한 인내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lu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