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용 경희대 교수 |
저는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말을 공부하고, 어휘를 공부하고, 언어 속에 담긴 사고와 문화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언어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물론 가르치는 언어는 한국어입니다. 학생에게도 가르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도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게 저의 일이기도 합니다. 배우는 언어는 여럿이 있습니다. 오래 배웠지만 여전히 어려운 영어와 몇 년 전부터 배운 일본어가 있습니다. 또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한문이 있습니다.
한문 공부는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한자를 배웠고, 학교의 한문 시간에 한자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한문학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국어 자료를 찾기 위해서 한자로 된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문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한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도 많은데 한문에 시간을 들이는 게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앞으로 공부를 20년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매주 두 번씩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께서 20년 공부를 위해서 체력을 기르고 있다는 말씀이 자극이 된 겁니다.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니 저는 20년 훨씬 넘게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니 시간에 여유가 생깁니다. 한문도, 일본어도 더 공부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왕 공부하는 거라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매주 한문을 일본어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문과 일본어를 동시에 공부하는 겁니다. 한문에 대한 설명이 일본어로 잘 되어있다는 점도 일본 책을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고전 공부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선택한 책은 천자문(千字文)입니다. 사언고시(四言古詩)로 되어 있어서 오래전부터 한문 공부의 기본 서적이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 앞부분은 외우기도 했던 책입니다.
천자문은 언어교육을 담당하는 저에게도 궁금한 책입니다.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라를 막론하고 이 책으로 한문을 공부하였을까요? 그 궁금증을 푸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00자도 지나지 않아서 등장하는 한문에 얽힌 고사는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어떨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아이들이 배웠다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천자문 내용 중에 ‘조민벌죄(弔民伐罪)’라는 부분의 이야기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네 글자는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벌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죄를 지은 자는 다름 아닌 임금입니다. 주색에 빠져 백성을 괴롭히고 도탄에 빠뜨린 왕은 토벌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천자문에는 임금에게 충성하라는 이야기보다 잘못된 왕을 벌하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천자문을 배우는 아이들은 100자도 못 가서 익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충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악하고 덕이 없는 임금에게는 충성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쫓아내야 하는 겁니다.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우리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로하지 않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배운 사람들이 선비로 자라납니다. 왕의 그릇된 행동을 참지 않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는 천자문을 배우고 자란 선비의 언어입니다.
저는 천자문을 공부하면서 언어교육을 다시 생각합니다. 언어교육은 단순히 소통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삶의 옷깃을 여미기도 합니다. 함부로 살지 않고, 서로 아끼며, 나누고 위로하는 것을 배웁니다. 저도 다른 언어와 문자를 배우면서 삶의 자세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천자문 다음에는 어떤 책을 공부할까요. 배우고 싶은 책이 참 많습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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