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서울 신도림의 어느 카페에서 70대 초반의 독립운동가 유족 한 분을 만났다. 3년 전 박물관 개관을 위해 기탁받았던 자료를 반환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그녀가 잠시 귀국한 시기였다. 그동안 그녀가 기탁해준 자료는 전시와 교육·연구활동에 널리 활용돼왔다. 우리나라 항공 역사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였기에 반환의 자리에서 직접 만나 뵙고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기탁한 자료에 대한 이야기와 덕담을 나누고 반환 절차를 완료한 다음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헤어진 지 10분쯤 지났을 무렵, 함께 타고 있던 담당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좋은 느낌이 들었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녀는 다른 유족과 협의를 거쳤고 그것을 박물관에 영구 기증하겠다는 뜻을 바로 전한 것이었다. 그 자료는 1921년 7월 7일에 발급된 ‘제임스 케이 리(James K. Lee)’의 비행사면허증(사진)이었다. 이 면허증은 수첩 형태로 제작돼 있는데 표지를 포함하여 모두 6면으로 구성돼 있다. 표지에는 국제항공연맹(FAI) 미국협회에서 발행한 비행사 면허증이라는 표제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고, 1면에는 비행사로서의 자격을 인증한다는 내용과 함께 면허증의 일련번호와 생년월일, 발행일, 발행기관 대표의 서명이 있다. 2면은 비행복을 입고 비행모를 쓴 주인공의 명함판 사진과 서명이 들어 있다. 3면과 4면은 이 면허증 소지자의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문구가 6개국 언어로 인쇄돼 있다.
‘제임스 케이 리’는 한국인 이용근(李用根·1894~1950)이다. 그는 1894년 평안도에서 태어나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 등을 졸업하고 191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17년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면서 흥사단에서 활동했으며, 1919년에는 재미 한인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결성한 청년혈성단에 창립 멤버로 가입했다. 독립운동의 방법으로서 비행술을 익히고자 레드우드 비행학교에 입교했고 1920년 윌로스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비행학교가 개교하자 비행교관으로 활약했다.
임시정부는 1921년 7월 20일자 공보를 통해 박희성(1896~1937)과 함께 그를 ‘육군 비행병 참위(陸軍飛行兵參尉)’에 임명한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정부에서 임명한 최초의 비행장교 두 명을 품게 되었다. 고맙게도 두 사람의 비행사면허증은 후손에 의해 잘 보존돼왔다.
이번 기증으로 박물관은 우리 항공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의미 있는 항공유산 하나를 소장하게 됐다. 그날 신도림에서 만난 사촌누나 같이 인자하고 자애로운 눈빛의 그녀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와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yj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