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95년부터 버스에 우선 통행권을 부여해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하는 ‘버스전용차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 측 1차로를 청색 차선으로 구분해 9인승 이상 승용차와 승합차만 다닐 수 있게 하고 있다.
민간의 ‘버스전용차로’제도가 방위산업 획득 체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 신속소요를 비롯한 새로운 무기 체계 획득 절차를 신설하는 방위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민간의 인공지능(AI)과 무인기, 드론 등 첨단 과학기술을 군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한 신속획득(Fast Track)제도가 마련된 셈이다. 개정안은 먼저 신속소요와 관련해 민간의 성숙된 기술이나 이미 개발해 입증된 핵심 기술을 군의 무기 체계에 적용할 경우 기존 10~15년 이상 걸리던 것을 5년 이내에 군 전력으로 도입할 수 있게 절차를 대폭 단축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법률 시행시기에 맞춰 올해 8월까지 시행령과 시행규칙, 행정규칙 등을 개정하고 내년부터 신속소요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처럼 ‘K-방산’의 새로운 전기가 될 신속획득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제언한다.
첫째, 신속획득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양산 단계에서 새로운 경쟁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신개념기술시범과 신속시범사업 등 기존의 신속획득제도의 성과가 미흡했던 이유는 최초 과제 선정 시 군의 참여도가 낮아 소요반영이 쉽지 않은 데다 양산 단계에서 다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즉 사업에 참여한 업체가 시범운용 제품 몇 개만 판매하는 것 외에 이익이 없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둘째, 무기 체계를 5년 이내 도입하기 위해서는 선행 연구와 소요 검증을 생략하고 사업타당성 조사를 최소화해야 가능하다. 특히 사업타당성 조사 대상을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으로 방위사업법에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물가상승과 방위력개선비 증가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업체의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1000억원 이상으로 조정해야 신속획득제도가 힘을 받을 것이다.
셋째, 국방부를 중심으로 방사청과 합동참모본부, 소요군,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관계기관의 긴밀한 협업이 중요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6개월 이내에 사전 개념 연구를 완료해야 하고, 신속소요 제기서를 접수한 합참은 최단 시일 내에 소요를 결정해야 한다. 방사청은 소요결정 이후 예산이 반영되면 빠르게 업체 선정 및 협약을 체결하고 연구·개발을 해야 한다. 모든 과정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발생 가능한 우발 상황을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방혁신 4.0’ 추진으로 AI 과학기술강군 육성을 추진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과학기술 발달속도를 고려해 기존 획득 절차와 차별화된 새로운 신속획득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방위산업 전용차로’라고 할 수 있는 신속획득제도가 마중물이 돼 국가 핵심 산업으로 떠오른 ‘K-방산’의 위용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첨단 과학기술과 접목돼 국방력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최병로 한국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shind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