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 미러’는 고정팬이 적지 않다.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첨단 기술이란 소재로 보여주는 방식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 중 ‘베타테스트’는 최근 관심이 많은 증강현실, 인공지능, 뇌과학과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 쿠퍼는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아버지가 치매로 세상을 뜨기까지 내내 곁을 지키고, 이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엄마와 접점이 별로 없어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고 답답했던 그는 어느 날 몰래 세계여행길에 오른다. 일종의 자아찾기다. 모처럼 활력을 되찾은 그는 런던을 끝으로 집에 돌아가려 하지만 카드를 해킹당해 비행기티켓을 구하지 못하고 데이팅앱에서 알게 된 소냐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그가 찾은 것은 임상테스트 앱. 유명 게임회사 사이토게무의 게임 베타테스트에 지원한 것이다. 게임은 버섯 모양의 작은 칩을 목 뒤에 심어 공포를 체험하는 쌍방향 증강현실 방식이다. 프로그램이 내면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학습해 공포의 대상을 실제처럼 만들어내는 개인맞춤형 호러게임이다. 쿠퍼는 비행기 안에서 본 영화 속 거대 거미,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힌 녀석과 맞닥뜨리는가 하면, 돌변한 소냐의 칼에 찔려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스톱’을 외치고 게임에서 빠져나오지만 또 다른 공포가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와 안도도 잠시, 쿠퍼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에게 끊임없이 전화하는 치매에 걸린 엄마와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의 반전은 쿠퍼는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 때문에 수신 전파에 이상이 생겨 신경망이 엉켜버린 것이다. 그런데 두뇌 깊숙이 들어간 프로그램과 컴퓨터 뇌는 계속 작동하면서 그의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를 꿈처럼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가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미 식품의약국으로부터 승인받아 화제다.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두뇌에 이식한 컴퓨터 칩과 신경세포인 뉴런이 상호 통신하는 시스템이다. 뇌와 컴퓨터의 직접적 소통이 가능해지면 시각장애자가 볼 수도 있고, 근육장애자가 움직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제어할 수도 있어 초능력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해만 해도 FDA는 뉴럴링크가 신청한 이 임상실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머스크는 자신의 뇌와 자녀들에게 칩을 이식하겠다며 안정성을 내세웠지만 FDA는 칩의 전선이 뇌의 다른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고 칩이 과열돼 조직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뇌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고 장치를 안전하게 추출하는 것 등 거부 사유가 수십 가지였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여겨졌는데 빠른 진전이 의외다. 중국도 지난 달 초 난카이대 연구팀이 원숭이를 상대로 뇌-기계 인터페이스기술을 사용해 로봇팔을 조작하는 데 성공했다. 공상과학이 속속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급속하게 변하는 기술을 현실의 법과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AI기술의 생산과 유통, 윤리의 숙제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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