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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예순, 점프는 끝났다?

피아니스트, 요리사 그리고 작가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정형외과 대기실이다.

이십여년 전 손을 다쳐 병원에 갔더니 내 손의 주상골에 미세한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 손 전문의사인 그는 손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직업병이라며 수술을 권했다. 수술이라니? 나는 내 몸에 칼을 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정직한 의사였다. 자신이 잘 하는 수술이지만 수술한 뒤에 그리 만족해하지 않는 환자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수술을 안 하고 물리치료를 하며 버티기로 했다. 인간의 몸은 자연치유 기능이 있으니까 잘 먹고 쉬면 낫지 않을까.

그동안 조심조심 손과 팔을 아끼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는 등 나름 관리를 잘한 덕분에 크게 아프지 않았다. 장편소설 2권을 탈고한 뒤에는 자판을 두드리느라 손에 무리가 갈 일도 별로 없었다. 5년 전 재판을 하면서 상대방의 억지 주장에 반박하느라 열에 달떠 자판을 두드리기는 했다. 팔꿈치가 저려 통증을 호소하는 내게 의사는 ‘테니스 엘보’가 왔다며 팔을 가능한 한 쓰지 말라고 했다. 수영을 못하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아 “수영은 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안 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뒤 한동안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못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의사의 협박이 잊힐 즈음 나는 다시 수영장에 드나들었다. 의사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해 매일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 이내로 자제하고 있다. 내 몸에 맞게 살살 달래가며 운동하니 몸에 큰 무리가 되지 않아 지금까진 괜찮다. 지방 강의를 다녀온 다음날은 수영장 출입을 삼가고 내 몸의 어떤 구석에서든 이상 신호가 잡히면 헤엄치지 않는다.

어제 수영장 물에서 나오며 계단을 이용해 나올까? 평소대로 뒤로 점프해 나올까? 망설이다 ‘아직은 괜찮을 거야’ 내 몸을 믿고 뒤로 점프해서 몸을 수영장 물밖으로 끌어낸 뒤에 왠지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젊은 시절, 수영장을 드나들며 점프하다 내 팔꿈치가 꺾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제 수영장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왼쪽 팔꿈치가 좀 이상했다. 아픈 건 아니고 관절과 관절이 부딪치는 느낌? 이제부터 수영장 물에서 나올 때 점프는 삼가야겠다. 늙는다는 것은 젊어선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것을 못한다는 것.

최근에 ‘노시니어존’이 생겨 논란이 되고 있다. 60세 이상은 출입할 수 없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살다 보니 별꼴 다 보네. 그래 니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라.’ 저주를 퍼붓고 시니어를 검색해봤다. ‘시니어모델’ ‘시니어플래너’도 있다. 신한은행에서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시니어 디지털금융교육’을 진행한다는 뉴스도 있다.

‘노시니어존’이 늘어날수록 젊은이들에게는 손해다. 젊은이들은 배움에 힘을 써야 하는데 배움은 책 속에만 있지 않다. 가장 큰 교육은 보면서 배우는 것. 스치듯 만나는 모든 이가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나이든 이들의 지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탈무드에도 쓰여 있지 않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노인들의 지혜다.

작가·이미출판사 대표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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