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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재정고갈 부른 기본소득 대폭 손질한 伊의 개혁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가 저소득층에 지급하던 기본소득 격인 시민소득을 대폭 축소하고 사실상의 실업수당 형태로 전환했다. 매달 가구 평균 81만원을 지급하던 것을 내년부터 51만원으로 축소하고 기간도 최대 1년으로 줄였다. 이 기간에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취업활동을 했다는 사실도 증명해야 한다. 무직자나 저소득자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개념으로 도입됐지만 4년 만에 접게 된 것이다.

시민소득은 빈곤타파를 목적으로 도입했지만 오히려 저소득층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빈곤을 고착화했다는 비난이 많았다. 해마다 약 10조3000억원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 만성적 재정적자를 더 악화시킨 건 물론 의료나 교육 등 다른 복지 분야에 쓸 돈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겼다. 일하지 않고도 1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어 취업 기피 현상마저 벌어졌다. 청년실업률이 22%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마저 나왔다.

이탈리아 정부는 대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기업이 1~2년 기간의 단기계약직 채용을 쉽게 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다. 비용 부담 때문에 정규직 채용을 꺼려온 기업들이 더 많이 채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야당과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멜로니 총리는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며, 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앞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적자 수렁을 막기 위해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연금개혁을 밀어붙였다.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지만 헌법위원회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 다.

포퓰리즘의 부작용에 직면한 유럽이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방향키를 돌리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노동, 연금, 교욱 어느 하나 손도 못 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겠다는 근로시간 개편안도 방향이 흔들려 어느새 쑥 들어갔다. 연금개혁 논의는 국회와 정부가 서로 공을 떠넘기면서 공회전만 계속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을 포함해 구조적인 개혁이 불가피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계산기만 두드리는 모양새다.

유럽 각국의 탈(脫)포퓰리즘은 과도한 복지가 결국 나라의 부를 좀먹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돈을 쓰다 보면 첨단 산업과 미래를 위한 투자 몫이 줄어들어 성장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 정체가 장기화하는 우리도 이럴 때가 아니다. 선심성 정책들은 걷어내고 미래 세대에 짐지우지 않는 연금개혁과 일하기 좋은 노동환경 등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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