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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결의 현장에서] 재난에는 골든타임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간주할 것인가.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책실패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므로 국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 다른 사기범죄 피해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이다. 결론은 세금을 투입해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보상하느냐에 대한 찬반으로 귀결된다.

애초 여야는 지난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검토를 마치고 2일 국회 전체회의를 거쳐 이후 단시일 내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논의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이 되는 피해자 요건을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특별법 법안심사소위 처리는 불발됐다.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첫 단추인 소위에서부터 발목이 잡혀 이번주 내 특별법 처리는 사실상 불투명해진 분위기다.

정부·여당안과 야당안의 가장 큰 차이는 ‘선(先)구제 후(後)구상’이다. 여야는 지원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양보 없는 대치 중이다. 정부가 피해자 인정요건을 일부 축소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는데 야당에서는 지원 대상을 전세사기로 제한하는 건 협소하다는 의견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최대 쟁점인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은 이틀 전 소위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결국 특별법 입법 논의가 차일피일 공전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세종청사 인근에서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3일 국토위 소위에서 특별법에 대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두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대승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라며 “일단 국회에 공이 넘어갔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론 과정에서 법이 늦어질 수는 있다. 문제는 지금도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맘 편히 살지도, 당장 팔지도 못하는 집의 전세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고 있다. 구제책이 확정되지 않아 다시 대출을 얻어 새 집을 찾을 여유도 없다. 심지어 스스로 피해자에 해당하는지도 속시원히 모른다. 비극이 일어난 뒤에야 정치권이 나서는 것이 원망스럽지만 지금이라도 확실한 지원책을 적용해달라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결코 외면하기 힘들다.

전세사기를 재난으로 볼지에 대한 결론 보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 개인의 삶이 극심한 고통으로 점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정적으로 이들이 재난급 피해를 봤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법 체계에 따른 구제도 한시가 급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지난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사고 직후 당시 여야는 옛 재난관리법(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전신)을 통과시켜 사고 19일 만인 7월 18일 해당 법이 공포·시행된 바 있다.

정쟁을 떠나 평행선 논의를 깨뜨리기 위한 접점 모색이 최우선이다. 특별법 통과가 미뤄질수록 우선매수권·경매유예 권리 부여 등을 통한 피해 방지도 늦어진다.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보호에는 이견이 없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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