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7%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떨어진 건 2022년 2월(3.7%) 이후 14개월 만이다. 지난해 물가급등을 주도했던 석유류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농축수산물도 안정세에 접어든 데 힘입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6.0%) 6%대로 올라선 뒤 7월 6.3%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8월부터 올 1월까지 6개월 연속 5% 상승률을 보이다가 지난 2월 4.8%, 3월 4.2%로 내려왔다. 정부는 이 같은 물가 상승 둔화세를 반영해 올 2분기 3%대 진입을 점쳤는데 그대로 됐다.
총지수 측면에서 보면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아직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6% 올랐다. 전월(4.8%)과 비교하면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외식은 7.6% 올라 전월(7.4%)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1만원짜리 점심 메뉴를 찾기 어렵다는 ‘런치 플레이션’ 고통이 커져만 간다. 개인 서비스도 5.0% 올라 2003년 11월(5.0%) 이후 최고치다. 전기·가스·수도요금은 23.7% 올라 전월(28.4%)보다 상승폭이 둔화됐다지만 애초 지난달 예정됐던 전기요금 인상이 정치권의 제동으로 미뤄진 결과다. 정부가 조만간 전기·가스요금 인상에 나서면 물가 전반에 주는 상승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제유가도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추가 감산을 결의한 데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하반기 원유 수요는 더 늘 수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물가를 잡으려면 환율을 안정시켜 수입물가를 낮춰야 한다. 환율이 높아져 수입물가가 높아진다면 비록 국제원유 가격이 안정돼도 한은은 금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경기 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경상수지 흑자 유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경상수지는 올 들어 2개월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무역수지는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적자다.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와 중국’이라는 2대 의존도를 낮추면서 수출국가와 품목의 다변화에 적극 나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 수출기업의 경쟁 상대는 해외 기업이 아니라 미국, EU(유럽연합), 대만, 중국처럼 자국 기업에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살포하는 국가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소총을 들고 기관총 든 경쟁 국가 기업과 싸우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금융 및 세제 지원, 규제 완화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