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간의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나날이 고도화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할 ‘한국형 확장억제’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이끌어내 미국의 핵우산을 한 단계 진전시킨 점은 성과로 꼽힌다. 신설될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핵기획과 운용에 한국이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이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한국 기업들의 불이익을 완화할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합의된 게 없어 아쉬움이 크다.
그동안 핵우산과 확장억제는 사실상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다. 유사 시 미국의 핵우산이 어떻게 작동되고 전략자산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북핵 위협에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진 것도 이런 모호성 탓이 있다. 한국이 NCG를 통해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우리의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은 큰 진전이다. 1년에 네 번 열리는 NCG 회의에서 실질적인 참여도를 높일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의 의사대로 끌려가지 않으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확장억제 강화에 밀려 의제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IRA, 반도체지원법도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양국 정상은 공동 성명에서 “이 법이 기업활동에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경제안보와 직결된 영업기밀 제공과 초과 이익 공유 등 무리한 요구와 차별적 보조금 등 부당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제부터는 후속 조치로 성과를 내야 한다. 넷플릭스, 코닝 등 8조원에 달하는 투자 유치와 첨단 산업·바이오·에너지 등에서 맺은 업무협약(MOU)이 모두 본계약으로 이어지도록 제대로 챙겨야 한다.
방미 성과가 결실을 보려면 무엇보다 국민 공감이 필수다. 민생이 팍팍하면 외교적 성과는 가려질 수밖에 없다. 수출 부진과 무역수지 적자, 원화 약세 등 경제 기초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여야는 내내 극한 대치 중이다. 전세사기로 눈물 짓는 이들이 늘고 간호법 처리를 놓고 의료계가 갈라지는 등 과제가 적지 않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난맥상을 풀기 어렵다. 외교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방미 중 보여준 부드럽고 여유 있는 리더십을 내치에도 보인다면 국정운영의 새로운 돌파도 가능하다. 시기도 좋다. 여야 새 원내 지도부가 뽑힌 만큼 자연스럽게 만남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제부터는 내정과 협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