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해 목숨 같은 보증금을 날리게 된 청년들의 비극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수도권 일대에 2700여채를 보유한,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의 피해자인 30대 여성 박모 씨가 17일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남성 임모 씨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지 사흘 만에 전해진 비보라 충격이 더 크다. 지난 2월에는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떼이게 된 30대 남성 A씨가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정부가 나름 강도 높은 전세사기대책을 내놓고 있는데도 청년들의 비극이 이어지는 것은 당장 절박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게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발표된 종합대책에 경매로 넘어간 주택에 대한 임차인 최우선 변제액 및 변제 기준 상향, 연 1~2%대 저리 대출(전세대출 대환대출 포함), 긴급거처 지원 등을 담았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우선 변제제도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최우선 변제금 기준이 전세금 1억5000만원 이하로 높아졌지만 2017년 당시 기준은 8000만원이어서, 9000만원에 전세를 들어온 박씨는 소액 임차인 변제를 받을 수 없었다. A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소급 적용이 안 되는 대책이 이들의 절망감을 키운 것이다. 미추홀구 피해가구 가운데 30% 가까이가 이들과 같은 형편이라니, 더 세심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전세사기 피해자들는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갈까 피를 말리며 지켜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낙찰을 받으면 전세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보증금 대출을 모두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책에서 보증기관이 대출을 먼저 갚도록 만든 뒤 피해자들이 이를 나눠 갚도록 했고 이자 부담을 덜 금융상품도 내놨지만 적용은 다음달부터다. 그전에 경매 절차가 끝난다면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보증금을 일부라도 보전하기 위해선 스스로 낙찰을 받는 게 최선이다. 피해자들이 우선 매수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피해자들이 사는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경매 시 피해자 우선매수권 부여, 대출 한도 제한 폐지, 긴급 주거 지원에 따른 이주비 지원 등을 건의했는데 정부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세사기 구제는 최우선 민생인 만큼 정치권도 적극 나서야 한다.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먼저 피해 구제를 한 뒤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소급 입법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LH 같은 공공기관이 피해 주택을 사들여 임대로 전환하는 방안 등도 살펴야 한다. 실질적 대책으로 더이상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