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권력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확 높이는 소위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을 ‘부자 감세’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해왔다. ‘연간 40조원 이상 돈을 버는 기업을 왜 국민의 혈세로 지원해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13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현안과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민주당은 이 자리에서 기존 정부안의 세액공제 혜택 이상을 주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세액공제율 정부 최초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호령으로 8%에서 15%로 상향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지난 1월 국회에 제출됐다. ‘15%+알파’ 세제 혜택이 민주당 내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292억달러(약 168조원) 규모로, 전체 수출액 중 18%에 달한다. 이처럼 수출의 근간인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 갈등 등으로 대(對)중국 수출이 줄면서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42.5% 감소해 거의 반 토막 났다.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무역적자가 228억달러를 기록, 69일 만에 지난해 연간 적자액 478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했는데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한 데 따른 것이다.
반도체 패권장악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 등을 무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보조금 지원의 조건으로 초과 수익 반납과 생산 기밀 공개를 내걸었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한국도 포함시킬 기세다. 지난주 이재명 대표가 “반도체산업이 풍전등화의 위기”라며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는데 반도체 불황기가 곧 한국 경제의 위험신호임을 제대로 인식한 것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경제살리기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반도체 분야의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려 이미 우리 경쟁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만은 최근 연구·개발(R&D)비용 25%를 세액공제해주는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켰고 미국 역시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25%까지 확대했다. 이런 흐름에 더 멀어지지 않도록 우리도 3월 중에는 조특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입법이 제때 뒷받침하지 않으면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국회도 이제 반도체 경쟁력이 곧 국가의 안보와 경제에 직결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