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둔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경기 부진으로 세수는 줄어들고 재정지출 소요는 늘어남에 따라 효율적인 재정 운용이 주요 현안이 됐다.
코로나 팬데믹 확산에 따라 많은 나라가 앞다퉈 재정을 확대해 급증하는 재정 수요에 대처했다. 이에 따라 급속한 물가 상승과 대규모 재정 적자가 뒤를 이었다. 미국의 경우 2021년 2.6조달러, 2022년 1.4조달러의 연방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국가채무가 31조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자지출 비중이 1.5%를 넘어섰다. 의회예산국(CBO)는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2035년에는 국가채무비율이 117%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난해 재정 적자가 100조원을 넘어섰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년째 100조원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비율이 50% 넘어선 것으로 예측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2030년 75%에 이를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2060년 채무비율이 14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한다. 2년 뒤에는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800조원을 넘어선다. 상황이 엄중함에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재정준칙 관련 법안이 6개월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재정준칙 법안이 제대로 심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을 막을 최소한의 입법장치 도입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예란 페르손 스웨덴 전 총리 말처럼 “빚이 있는 나라는 자유가 없다”. 국가가 빚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빚이 사회를 통제하는 기막힌 역설이 발생한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다. 법제화를 더는 미룰 수 없다.
포퓰리즘 정책이 양산되는 가운데 공공복지지출이 급팽창하고 있다. OECD의 ‘사회지출 2023’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2019년 GDP의 12.3%를 차지했다. 2009년 8.1% 대비해 4.2%포인트 급증했다. 2009~2019년 동안 우리나라가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 공적 연금 수급자 증가,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이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다. 2025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고령화 진행 속도가 빨라질수록 복지지출 증가를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복지지출 통제에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 정책의 효율성 제고가 시급한 과제로 제기된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노인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재정지출 효과가 약 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지출의 비중이 커지면서 예산의 성장 촉진 효과가 반감되는 결과로 해석된다.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 공급 위축, 고용의 질 악화, 소비 성향 둔화 등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재정구조 개편, 재정건전성 제고, 재정 생산성 향상 노력이 시급하다.
‘이코노미스트’지 분석에 따르면 고령화와 포퓰리즘으로 선진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한 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로 인구절벽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경고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향후 5년 이내에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의 재정 포퓰리즘으로 ‘묻지마’ 예산 편성이 일상화되고 있다.
성장보다 복지에 방점을 두는 분배 우선 정책이 강조되면 의료·복지 지출, 노인연금 같은 선심성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래 성장을 위한 교육, 연구·개발(R&D), 인프라 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초유의 복합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건전성 원칙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박종구 초당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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