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인생의 낙이라고 할 만큼 꽤 중요하고 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소위 ‘먹방’을 콘텐츠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인기와 관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종류와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방송에 소개된 맛집에 직접 찾아가 맛을 보며 맛집 탐방을 즐긴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조차 포기하고, ‘먹는 즐거움’을 거부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바로 ‘프로아나(pro-ana)’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요즘 급부상 중인 키워드를 토대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Pro-ana’를 상세히 설명했다. ‘찬성’을 뜻하는 ‘Pro(프로)’와 ‘거식증(Anorexia)’에서 딴 ‘Ana(아나)’를 합성한 단어로, 말 그대로 깡마른 몸매에 지나치게 집착해 거식증에 걸리기를 희망하며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형태로 발전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흔히 ‘거식증’으로 알고 있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대표적인 섭식 장애의 하나로, 살을 빼려는 지속적인 행동, 체중 감소, 음식과 체중과 연관된 부적절한 집착, 음식을 다루는 기이한 행동,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 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열 살 여자아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입술에 살짝 묻은 두유를 휴지로 닦아낸다. 너무 굶어 몸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버린 아이의 몸무게는 고작 18kg 남짓이다.
발달 기준표에 따르면 5, 6세 수준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의사의 무서운 경고도 아이에겐 소용이 없다. 결국 부모는 아이의 입원 치료를 결정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 구급차를 타고 이동한다. 수액을 맞기 시작하자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 “살찌기 싫어, 너무 싫어.” 최근 어느 상담 프로그램에 나온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이야기다.
비단 이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요즘 10대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먹토(먹고 토하기)’를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나름의 꿀팁을 공유하는 글과 사진은 물론 함께 독려하는 커뮤니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다이어트’가 건강한 미(美)를 위한 것이 아닌 질환이 될 정도의 기이한 ‘행위’가 된 셈이다.
무엇이 그리고 누가 이들을 굶주리게 하는가? 깡마르고 가녀린 몸을 아름답다고 칭송하고, 몸이 큰 사람을 비난하고 수치심을 주며 반대로 날씬한 사람에게 조금 더 호의적으로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음식을 거부하게 한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고 아주 작은 치수의 옷을 거리낌 없이 입을 수 있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주변 시선에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기본적인 삶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 삶의 주인이 바뀐 것이나 다름없다.
같을 수 없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통념에 내 소중한 삶과 몸을 잃을 순 없다.
숫자로 보여지는 몸의 크기보다 내면의 힘이 더 크고 단단해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빛날 수 있다.
김은성 호남대 작업치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