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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과도한 정부 압박 자초한 은행도 자성의 계기 삼아야

15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통신·금융 분야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니 과점 폐해를 줄일 실질적인 경쟁 시스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라”는 요구를 넘어 산업 재편까지 주문한 것이다.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난 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은행들이 자초했다. 서민의 고통은 가중되는데 손쉬운 이자장사로 떼돈을 벌어 집안 잔치만 해오던 은행들이다. 사회공헌엔 부풀리기 숫자놀음만 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들이 지급한 성과급만 1조4000억원이다. 전년보다 35%나 늘렸다. 희망퇴직자들에겐 줄잡아 6억~7억원의 퇴직금을 쥐어 내보냈다. 3년치 월급에 건강검진비 학자금까지 얹어줬다.

그러면서 공적 기능엔 인색했다. 금융당국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향후 3년간 10조원에 달하는 사회공헌을 약속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실제 출연하는 금액은 7800억원에 불과하다. 성과급의 절반이다. 그나마 이미 발표됐던 게 5000억원이다. 늘린 건 2800억원뿐이다. 그걸로 보증을 해서 12배에 달하는 실제 대출을 일으킬 수 있으니 10조원 지원이란 것이다.

은행들이 제 배만 불리다 화를 부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IMF의 거친 파도에 공적 자금으로 목숨을 건진 은행들은 불과 3년 만인 2001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 후 몇 년 만에 상여금을 주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당시엔 월급을 절반밖에 못 받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었다. 게다가 대형화, 종합금융이 대세였다. 금융사 인수자금이 필요했다. 내부 돈잔치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적 자금으로 열매를 땄으니 이제 사회에 거름을 주라”는 사회적 요구는 거셌다. 미소금융을 비롯한 서민구제금융의 싹도 그렇게 텄다.

사회공헌을 돈으로만 하라는 건 아니다. 금융의 선진화로 국제 경쟁력을 가진 은행이 되라는 의미가 더 크다. 하지만 오늘날 은행은 덩치만 커졌을 뿐이다. 선진화된 금융이나 수익구조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덕에 적정 규모가 커져 이익잉여금은 늘어가지만 여전히 담보 잡는 이자장사가 주요 수입원이다. 5대 시중은행 전성기가 10년을 넘었다. 안 그래도 재편 얘기가 나올 판이다.

그럼에도 금융산업 재편은 그렇게 뚝딱 진행될 일은 아니다. 완전 경쟁이 모든 곳에서 꼭 옳은 것도 아니다. 핀테크를 비롯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효율적 경쟁방안을 지혜롭게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원래 해야 할, 필요한 일을 하고도 ‘못된 놈 손보기’라는 오해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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