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희생자 숫자가 공식 집계만으로도 3만명을 넘었다. 아직도 건물 잔해에 갇힌 사람이 20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 집계는 예상 자체가 공포다.
이번 지진이 더욱 끔찍한 건 인재가 화를 키웠다는 점이다. 부패가 피해를 키웠고 무능이 희생자를 늘렸다는 것이다. 튀르키예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각판 충돌지점에 있는 튀르키예는 원래 지진이 잦은 곳이다. 1939년 3만2000명(규모 7.8 지진), 1999년 1만7000명(규모 7.6) 등 국가적 재난이 적지 않았다. 조치와 대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진세를 걷기 시작(1999년)한 게 벌써 사반세기 전이고 건물 내진설계를 의무화(2007년)한 지도 15년이나 됐다. 그런데 20년 넘은 건물이야 그렇다 쳐도 10년도 안 된 새 건물까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사이 건설업자와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의 배만 불렸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정부는 내진설계 위반 건물을 보완하기는커녕 과태료를 주기적으로 면제해줬다.
지진 발생 이후의 대응은 더 한심하다. 현장에 투입된 정부구조대는 별다른 장비조차 없었다. 6조원 가까이 거둔 지진세의 사용처는 오리무중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사흘 만에 현장을 방문해서는 “이런 지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변명만 늘어놨다. 집을 잃은 이재민 상당수는 아직 대피할 숙소도 마련하지 못하고 추위 속에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부실 건물을 지은 건설업자들은 줄줄이 해외 도피에 나섰다. 정부는 부랴부랴 구속을 외치면서도 그 와중에 늑장대응을 비난하는 시민의 트위터 계정을 중단시키고 일부는 체포하며 입단속에만 철저했다. 분통이 터진 지진 현장에선 폭동이 난무하고 약탈도 자행된다. 안전에 위협을 느껴 철수하는 외국 구조대도 한둘이 아니다.
자연재난과 인재가 겹친 튀르키예는 지금 생지옥이다. 인재의 근본 원인은 포퓰리즘 장기 집권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비난의 중심 표적인 에르도안 대통령도 한때는 튀르키예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리더였다. 하지만 그건 총리로 집권했던 20여년 전이다. 2014년 개헌 이후엔 장기 집권에만 몰두했다. 금리인하와 최저임금 50% 인상 등 포퓰리즘성 나 홀로·거꾸로 경제정책으로 국가위기를 자초했고 이번 지진으로 위기대응능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허둥지둥 정권이 또 어떤 기상천외한 해법을 제시할지, 국민은 또 어떻게 응답할지 궁금하다. 절묘하게도 튀르키예 대선은 5월, 총선은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