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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7광구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위한 변명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란 점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나마 예술영화에 가까워 흥행은 별로였다. 오래된 고전이나 고사성어는 물론이고 논문이나 저술의 주제로도 제대로 다뤄진 걸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 중 하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류의 변형 문구까지 포함하면 칼럼 제목으로는 단연 넘버원이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 합리화시켜 빠져나가는 논리로도, 그걸 비판하는 논리로도 나무랄 데 없다. 손잡이도, 칼날도 양쪽에 다 있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칼이다. 어디를 잡아도, 어느 쪽으로 휘둘러도 다 말이 된다.

단연 효용성 높은 건 대개 ‘내로남불’이나 ‘말 바꾸기’를 할 때다. 당연히 가장 많이 쓰이는 곳도 그런 사례가 줄을 잇는 정치권이다. 공수처법, 비례위성정당 등 정치적 목적에 따라 같은 당이 시차를 두고 정반대의 당론을 채택하는 사례는 수도 없다. 정치인 개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정계 은퇴와 번복에선 공격과 방어 양측의 논리가 똑같이 그것이다. 입에 거품을 물며 위장전입을 비난하던 야당 의원도 정권이 바뀌어 여당이 되면 교육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옹호한다. 가재 붕어 개구리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들자던 인물은 특권을 활용해 자식의 의대 진학을 도왔다. 수월성 교육을 맹비난하며 특목고 철폐를 주장하면서 자식은 모두 그런 학교에 보내는 교육감도 있다.

뒤바뀐 정부 정책에서의 사례도 꽤 많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친기업·반기업 정서는 오락가락 정책을 불러왔다. 공정위와 금융위는 순환출자에 대한 해석을 뒤집기 일쑤였고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때렸다 주워담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논리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게 다는 아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변명의 구석이 있다. ‘지금은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적지 않다. 정상 참작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에 산유국의 꿈을 안겨줬던 마라도 남쪽 대륙붕의 제7광구 문제가 꼭 그렇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이 지역의 영유권을 국제사회에 선언하고도 일본과 “꼭 공동으로만 개발한다”는 내용의 대륙붕 협정을 맺었다. 그 후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영해 관련 국제법이 대륙붕 중심에서 200해리로 변화 기미가 생기자 계속 탐사를 거부하고 있다.

일부에선 멀쩡한 우리 권리를 공동 개발로 자승자박하는 바람에 이런 곤란을 겪게 됐다고 비난하는 모양이다. 일종의 박정희 흠집 내기다. 하지만 돈이 없던 당시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말뚝만 꽂아봤자 그림의 떡인 시절이었다. 단독 개발 금지도 지금이야 독소조항이라지만 당시엔 일본의 독식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아무데나 상황논리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지금은 흠집 낼 때가 아니고 뭉쳐 대응해야 할 때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든, 한일 정상회담 의제 제안이든 뭐든 해야 한다. 50년 기한의 이 협정은 2028년 만료된다.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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