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부동산 투자열풍 속 ‘집’은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할 자산증식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당시에도 수많은 청년·취약층에게 집은 주거공간으로서의 가치가 절대적이었다. 투기광풍이 지나간 뒤 드러난 깡통전세 피해는 제대로 된 방 한쪽에서 살고 싶었던 이들을 ‘전세사기 지옥’으로 내몰았다.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위한 전 재산을 한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망한 빌라왕 김모 씨 사건 피해자 중 보증금을 돌려받은 이들이 지난 한 달 새 100명 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이들이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보도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다른 피해자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이들이 있다.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이다.
이들은 직접 경매에 나서 피해를 구제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가뜩이나 부동산경기가 얼어붙었는데 아파트도 아닌 데다 골치 아픈 일에 얽힌 빌라 물건이 제대로 낙찰될 리 없다. 최근 경매시장 낙찰률이 소폭 오른 것은 몇 차례 유찰된 저가 매물 위주로 소진된 것이지, 전반적인 매수세가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 사건과 연관된 물건은 빌라 가치 대비 보증금까지 높다. 이러다 보니 피해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매에 나온 집을 떠안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김씨의 체납 세금도 문제다. 지난해 말 ‘국세기본법 및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4월부터는 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간 경우에도 체납 세금보다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을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바뀌는 제도는 임차권의 확정일자 이후 발생한 당해 세(해당 부동산 자체에 대해 부과된 국세·지방세와 가산금)에만 적용된다. 즉, 확정일자 이전에 체납 세액이 있을 경우에는 우선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 내용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일주일 전 공개된 대책은 피해 예방과 처벌 강화가 핵심이었다. 이미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해서는 초저리 자금을 통한 대출 갈아타기, 불가피하게 전셋집을 낙찰받아도 무주택자로 간주한다는 게 주된 지원 내용이었다. 보증금 회수 구제책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았다. 이러다 보니 보증금을 되찾은 이 사이에서는 “먼저 탈출해서 미안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피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1만7000명이 넘는 전세 세입자가 모인 한 인터넷카페의 부제는 ‘불안한 세입자들의 소통공간’이다. 정부의 발표 이후에도 해답을 얻지 못한 이들은 피해자모임에서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나누며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 거창한 대책 발표가 끝이 아니다. 불안에 갇힌 세입자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완벽한 보증금 회수를 장담하지는 못해도 피해 회복을 위한 전 과정에서 밀착 법률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일 쏟아지는 부동산 연착륙 대책, 특별법보다 훨씬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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