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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그를 보기 위해 광장에 모인 많은 시인 지망생에게 말의 포문을 열었다. 첫 주제는 고독의 진정한 의미였다. “적막한 밤이 오면 고독감이 온몸을 휘감죠. 누군가는 내면의 상처를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기도 하죠. 누구나 자신의 현실에 괴로워하고 고독에 힘겨워할 수 있어요. 고독을 통과하는 게 기쁨과 특별함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말일까요.” 그는 고독을 잘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특별한 주문을 하라 조언했다. “눈을 감습니다. 어릴 적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큰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모두는 고독한 존재지만 그런 사랑이 있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의 시 한 소절을 들려준다.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바다로부터 저녁놀을 향해 떠올라 멀리 외진 들녘에서 늘 고적한 하늘로 올랐다가 그리하여 도시로 내린다. 동틀 녘에 비가 내리면 모든 골목이 아침으로 향할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체와 육체가 실망하여 슬픔에 헤어져 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과 사람이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야 할 때, 그때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광장에 모인 젊은이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릴케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늘 혼자라는 생각에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시인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고독과 친구가 돼라’는 조언은 지겹게 느껴집니다. 고독사라는 말 아시죠. 혼술에 혼밥이라는 게 유행하는 사회에서 고독이란 게 병으로 느껴집니다.”
릴케는 인간의 숙명과 같은 고독을 온몸으로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인은 수없는 관계를 지향하며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한다며 ‘고독하라’는 자신의 견해를 이어갔다.
“음. 인간은 결국 고독한 존재입니다. 고독하다고 미움받거나 저주받는 게 아닙니다. 고독해야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훌륭한 시인이 되려면 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내면에 침잠해 왜 시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해보세요. 이 세상의 모든 발명도 고독에서 출발한 것이 많아요.”
릴케의 말에 의하면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과학자인 니콜라 테슬라를 깊이 존경했다. 그는 천재 발명가의 이름을 따서 그의 혁명적인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시인은 일론 머스크의 천재성을 존중하면서도 세상의 노이즈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부분에서는 반기를 들었다. 정치와 경제적 이해타산에 물든 그의 행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일론 머스크는 과학자 테슬라를 진정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인생은 미제의 방정식으로 남아있기에 의미 있는 거예요. 인생이란 방정식에 알려진 요소가 포함되어 다행이에요. 알려진 요소로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는 데 고독이란 위대한 힘을 투입해 문제를 풀어보세요.”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발견은 훌륭했지만 당대의 비난과 억압과 마주해야 했다. 고독한 그들의 발견은 처음에는 세상에 반항적으로 비쳤으나 주장이 진실로 받아들여진 후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쯤에서 나는 고독을 시인이 시를 창조할 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마음의 자세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고독에는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없어야 합니다. 고요한 감정의 교류만 남긴 채 자신과 대화할 때 우리는 진정 행복하고 창조를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죠.”
다음 주제는 불확실성에서 살아남기였다. 세상은 갈수록 초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인간에게 중요한 삶의 지혜는 무엇일까? 릴케가 광장에 한마디를 던지자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퍼졌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고독은 더욱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예단해서 판단함은 금물이지요.”
또 다른 시인 지망생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고독 속에서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당신의 말에 구체적 믿음을 주세요. 제 앞길이 안개 자욱하다고 지레 겁먹고 움츠리고 있어 그걸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 같아요.”
릴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력 있게 말한다.
“대부분 사람은 바깥세상 일에 열중해 자기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해요. 고독을 즐길 때만이 ‘참 나’와 마주해서 불확실성하에서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죠.”
릴케는 고독을 즐기더라도 우리가 확실한 예측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현대인은 불확실성(uncertainty)과 위험(risk)이 넘치는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 기후변화나 팬데믹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불확실성에 해당한다. 반면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문제와 점증하는 양극화 현상은 새로운 위험의 가속화라 하겠다.
[미국에너지부자료] |
릴케는 불확실성은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이라 했다.
반면 위험은 알려진 모르는 것(known unknowns)으로 확률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라며 둘을 구분했다. 이는 시카고 경제학파인 프랭크 나이트가 측정 가능성을 두고 양자를 구분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주사위를 던질 때 어떤 숫자가 나올 확률은 6분의 1로 이미 주어져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품, 서비스가 성공할 확률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렵다. 기업가는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험가적 경영행위로 이익을 얻는다. 현대인은 불확실성을 부정적인 대상으로 여기고 확실성만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보험과 연금 제도를 고안한 예를 보라. 노출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 옵션 같은 다양한 헤지 파생상품도 고안하지 않았나. 하지만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상황에서 합리적 대응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불확실성은 경제의 장막을 흐리는 암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할 때 사람들은 비관주의, 낙관주의, 현실주의, 절충주의, 후회의 최소화 같은 저마다 다른 기준을 선택해 일관성 없게 행동한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본능이나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겠다. 잠재의식과 삶의 경험으로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한다는 이유가 그래서 나온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인류 최고의 능력이 직관이라 했다. 노을이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릴케는 직관적 지능을 보여주는 5가지 신호를 말했다. 그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주장처럼 ‘마음속 경험의 상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우선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경청해 보세요. 본인의 예감을 신뢰할 수 있는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남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하지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세요. 고독은 자아와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자기 생각을 분석하고 감정을 이해한다면 문제해결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호는 어떤 일을 할 때 최적의 시기를 아는 것을 비롯해 행동에 나서야 할 때, 당장 관계나 책임을 종식해야 할 때 등 여러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돕는다. 결국 고독이 불확실성하에서 신호를 감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게 릴케의 주장이었다. 릴케는 스마트폰을 꺼내 노벨경제학자 리스트를 찾다가 한 인물에 눈길이 간다.
“경제학자 중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셸링이라는 인물이 있죠. 이 양반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죠. ‘사람들이 계획을 세울 때 익숙지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과 혼동하더라고요.’ 어떠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광장은 여러 의견으로 웅성거렸다. 영국의 석학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가 1977년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tainty)’를 쓴 지 한참이 지났다. 그는 ‘사회를 주도하는 지도원리가 사라진 불확실한 시대’라는 말을 남겼다. 광장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친다.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 같아요. 어느 특정 원리로 세상을 설명하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불확실해졌어요.”
우리가 진리라고 여겨왔던 많은 것과 합리성, 이성에 근거한 담론 체계도 의심스럽다. 릴케에 의하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우발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불가능한 일로 생각했다. 1929년 대공황, 글로벌 금융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사건은 발생 자체가 이례적이지만 역사 속에 분명히 존재했고,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에게 주어진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 했다. 현재의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경험하고 있다. 그 진보의 속도만큼 불확실성의 규모와 범위도 확장되고 있다. 광장에 있는 한 젊은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국경을 허물고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 세계화 시대는 가버렸습니다.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과 영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고, 미국에선 자국우선주의를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이어 주장합니다.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중국이 자유무역을 오히려 주장하죠.”
과거의 냉전 시대엔 미국과 소련이 두 축이었다. 이제 미국과 중국으로 축이 바뀌었다. 경제의 큰 획이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했다. 시인은 명확한 결론 대신 이런 대답을 했다. “경제를 떠나 여러분의 삶에 이런 말을 대입해 보세요. 여러분은 한창 젊습니다. 여러분에게 펼쳐진 의문점을 사랑해 보세요. 자물쇠로 굳게 잠긴 방들을 사랑하듯이, 완전히 다른 낯선 언어로 쓰인 책들을 사랑하듯 말이죠. 당장 답을 내려 말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세요. 어느 날 당신은 그 해답 안으로 한 발 한 발 들어와 살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연마하고 신뢰하며 전진하세요. 고독의 침잠 속에서 깨어난 당신은 의지로 무장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손에 움켜쥐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살리느냐 죽이느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예측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지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도 삶의 묘미다. 시인은 광장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불확실성은 장애물이 아닙니다. 영감과 자기 발견을 이끌며 최고의 길로 안내하는 삶의 지평선입니다.”
때로는 불확실한 순간에 위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집착을 버릴 때 예측 가능한 것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도 있다. 불확실하고 새로운 것에 자신을 던지는 기쁨은 때로는 큰 성과를 선사한다. 상황에 따라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행복도 가능하다. 인생에서 무엇을 할지 모르고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록된 삶을 사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내 삶에 아마존이나 구글이 항상 답을 찾아줄 수는 없다. 때로는 고독이 묻어난 본능을 믿고 불확실한 것을 탐험하는 데 가치가 있다. 그렇게 탄생한 상품이나 제품이 세상을 구제하기도 한다.
“살면서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건, 사는 게 아니죠. 시 구절 한번 들어보세요.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바람을 놓으십시오.’ 고독한 자는 인내하는 자입니다. 가을의 수확을 받을 자격이 있겠죠.”
초불확실성하에서 경제는 늘 어렵고 위기는 늘 새로운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래도 그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는 항상 인간의 몫이었다. 고독과 사색과 몰입이 주는 해법에 의지하면 어려워도 길이 보인다. 종종걸음으로 광장을 떠나는 릴케 뒤로 많은 이가 고개를 숙였다. 이후 그가 장미 가시에 찔린 게 화근이 되어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광장은 슬픔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