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부족합니다. 그 많은 수주물량을 제때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국내 조선사들이 올해 1월에만 무려 7조원에 달하는 물량을 따내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마냥 웃지만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감은 4년치나 그것도 돈 되는 고부가 선박 위주로 쌓아놓고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차질 없이 생산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현장에선 선박을 건조·관리하는 인력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업이 줄었고 공사일정이 미뤄지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이에 생산 스케줄을 조정하다 못해 일부는 해외 경쟁사에 일감을 보내는 실정이라고 현장 관계자들은 전했다. 원가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설계 파트에서 자잿값이 더 들더라도 생산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안을 조정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언젠가부터 ‘디폴트값(기본값)’이 돼버린 조선업 인력난이라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 모양새다. 조선해양인적자원개발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조선업 종사자 수는 9만5030명으로, 2014년 말과 비교해 절반도 채 안 된다.
특히 조선업 물량이 줄어들 당시 사내 협력사 기능인력 위주로 인력을 감축한 여파로 생산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최근엔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임금을 견디지 못한 숙련공들이 줄줄이 건설·육상플랜트업계로 이탈하고 있다. 조선업 생산직 필요 인력은 지난해 말 기준 9000명가량 부족한데 올해 말에는 부족 인원이 1만4000여명까지 확대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당장 필요 인력을 확충하는 데 그쳐선 세계 최정상에 이어 2위의 자리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을 받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가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5년간 4만3000명의 추가 인력 확보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단의 인력 확보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업계도 인력 부족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인력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 조선업을 최우선으로 외국인 근로자 인력 쿼터를 확대했고 저숙련 인력에 대한 비자 심사도 속도를 높였다. 지난해 10월에는 상생협의체를 만들어 임금격차 해소 등을 중재하는 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작업 환경과 임금구조, 하도급 구조 개선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친환경 선박 개발과 같은 제품 혁신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인력을 포함한 생산성 관리 측면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기 침체기를 겪었던 조선업황이 되살아나고 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면 뱃사공이 필요하다. 조선업이 아무리 잘나간들, 조선사가 아무리 일감을 쓸어온들 사람이 없으면 배를 만들 수 없다. 조선 숙련공이 떠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게 어쩌면 그 어떤 기술 개발보다도 조선사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임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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