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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약탈 넘어 포용으로, 진심이어야 할 은행의 공적 기능

은행들이 연일 공적 기능에 충실한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출금리 인하는 가장 대표적이다. 18일에도 농협은행과 KB국민은행의 금리인하가 발표됐다. 다른 은행들도 곧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한때 8%를 넘던 은행들의 주담대 대출금리 상단은 6%대로 내려왔고 4%대 금리를 적용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체수수료 무료와 중도상환해약금 면제 등 그 밖의 경제적 부담 완화 조치들까지 포함하면 서민이 확실한 도움을 얻는 건 분명하다.

그뿐이 아니다. 5대 금융지주사들은 대주단 협의체를 구성해 자금난 때문에 위태로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만기 연장과 재투자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코로나19, 레고랜드발 신용 경색, 고물가·고금리 등 돌발 악재가 겹치면서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을 위한 조치다. 부동산경기의 연착륙에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물론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은행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자 깎아주기 경쟁을 할 리가 없다. 위험을 무릅쓴 대출에 적극적일 수는 더욱 없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압력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요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단골발언은 “고금리로 인한 가계부실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달라”거나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표현은 요청이지만 내용은 대놓고 지시다. 대주단 협의체도 17일 금융위원회 주관의 회의를 통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이를 관치금융이라 비난하기는 어렵다. 자율성을 해치는 인사 개입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시점에서 가장 급한 건 취약계층의 보호다. 햇살론과 같은 정부 차원의 조치와 함께 은행들의 공적 기능도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얘기다. 안 그래도 약탈적 금융이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은행들이다. 금리가 천정 모르고 오르는 상황에서 이자 수익은 20% 가까이 늘어났고 평균 연봉 1억원이 넘는 직원들과 성과급 잔치를 벌였으니 하는 말이다. 비난 회피를 위해서라도 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포용적 금융조치에 은행들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해마다 4조원 넘는 순이익을 기록 중인 금융지주사들이지만 97년 외환위기 때 금융기관 부실에 들어간 공적 자금만 170조원에 달한다. 그건 다 국민 세금이다. 돈 갚았다고 심정적 부채까지 잊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결국은 은행에 이익이다. 부담을 줄여 위기를 넘기는 게 부실자산을 늘리는 것보다 자산 건전성 유지에 유리하다. 죽다가 살아난 은행들 자신이 바로 그 본보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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