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에서는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라.”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발언으로 회자되는 명언이다. 지금 이집트 경제 상황을 이 명언에 빗대서 바라볼 수 있겠다.
이집트의 화폐가치는 하락 추세다. 이집트파운드화(EGP)의 가치는 2022년 초, 달러당 15.6파운드에서 올해 1월 1일 기준 57% 가까이 하락해 달러당 24.5파운드가 됐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지난 12월 발간한 보고서는 EGP가 2024년~2027년에도 점진적인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래 이집트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약 200억달러 빠져나갔다.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달러화 가치상승으로 인해 수입에 의존하던 식량 및 생필품 가격이 급상승하고,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여행심리 악화로 관광수입마저 축소된 상황이다.
이집트 내에 달러보유액이 줄어들자 당국은 수입규제책을 내놓았다. 당장 외화가 더 들어올 획기적인 방법은 없으니 외화소비를 줄이겠다는 방안이다. 지난해 무역관에서 우리 기업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문의도 ‘수입이 되나’ ‘달러 송금이 되나’ 등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늘 그렇듯 난리통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도 있다. 식량, 의료품 등 필수불가결한 재화가 아닌 일반 완제품, 중간재에 대한 수입이 거의 중단되자 이집트 내에 생산설비를 보유한 기업은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판매호조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벌어들인 현지화(EGP)가 환율조정으로 인해 평가절하되며 사전에 대응하지 못했던 기업은 손해를 면치 못했지만,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과 제품들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회는 우리 기업에도 열려 있다. 높은 진입장벽을 넘으면 그것은 든든한 보호벽이 된다. 우리 기업에 지금 이집트는 리스크가 큰 시장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장에 진출해 수입상품에 목마른 이집트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좋은 때이기도 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이집트는 더 매력적인 시장이다. 이집트는 인구 1억500만명으로, 40세 미만 청년층이 70%에 육박한다. 중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이며, EU를 비롯해 COMESA(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 GAFTA(범아랍자유무역지대), 터키 등과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유럽-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이 가능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걸프 아랍 산유국들은 2022년에만 이집트에 약 200억달러의 예금과 투자를 약속했고, 110억달러 이상을 이미 이집트에 예치했다. 지난 12월에는 IMF에서 약 3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몰아치고 있는 세찬 풍파가 지나가고 나면 웅크리고 있던 아프리카의 거인은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잠재력이 큰 시장을 미리 살펴보고 선제적으로 진출한다면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동욱 코트라 카이로무역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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