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설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설 성수품 집중 공급과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을 통해 수급 및 가격 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취약계층 지원으로 민생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이동편의를 높이고 안전대응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장바구니 걱정 없는 넉넉한 명절’ ‘온기가 감도는 따뜻한 명절’ ‘행복한 만남이 있는 즐거운 명절’ ‘걱정 없이 편안하고 안전한 명절’ 등 구호도 좋다. ‘명절은 더 풍요롭게, 어려운 곳은 더 든든하게’라는 목표는 더 좋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온통 늘 보던 것들이다. 예정된 정책의 나열이다. 새롭거나 특별해 보이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안 하면 이상한 항목이다. 수급안정대책반이나 물가책임관도 때 되면 당연히 나오는 직함이다. 취약계층 전기요금 할인이나 에너지바우처 단가 인상, 사회복지시설 난방비 추가 지원 등은 이미 올해 예산을 짤 때부터 반영됐던 내용이다. 오죽하면 미뤄봐야 해결될 일도 아닌데 1분기 가스요금 동결까지 민생대책으로 내놓았을까. 하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설에도 철도요금 동결이 나왔었다. 하도급 대금의 설 명절 전 조기 지급 추진이나 기부 봉사 활성화는 실현 가능성마저 의심스러운 내용들이다. 앞으로 설 명절을 며칠 앞둔 시점이 되면 해당 부처 장관들이 현장을 돌며 점검에 나서고 매점매석 엄벌 방침도 발표할 게 뻔하다. 해마다 진행되는 순서다.
물론 해마다 설과 추석이면 꼬박꼬박 발표되는 민생안정대책이다. 그때마다 눈이 번쩍 띄일 아이템을 낼 수는 없다. 한계는 인정한다. 그래도 너무하다. 항목은 그대로 두고 수치만 바꿔놓으면 되는 수준이다. 올해도 39조원 규모의 설맞이 중소기업·소상공인 자금 지원은 40조원이었던 지난해 설과 거의 판박이 내용이다. 표현과 구호만 이리저리 달리할 뿐이다. 심지어 설과 추석을 맞바꿔도 될 정도다. 설 성수품 관련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 공급, 사상 최대 할인 지원 등으로 포장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가격이 올라가니 당연한 결과다. 생색낼 일이 아니란 얘기다.
정책 창의성이 절실하다. 창의성은 전문성에서 나온다. 잘 아는 게 먼저다. 보통 1만시간을 들이면 전문성이 생긴다고 한다. 매일 3시간씩 10년이다. 길고 멀어 보이지만 정부 조직과 관료들에겐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시간이 축적됐다. 게다가 고시 관문을 뚫은 엘리트들이 즐비하다. 그 인력에 그 시간이면 전문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창의성 높은 정책은 나오지 않는다. 해마다 같은 문제를 푸는데도 마찬가지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