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3년 경제와 영리한 토끼의 굴파기
제1굴 민심…가계부채
제2굴 외교…미중균형
제3굴 변화…구조조정

변화가 위기이자 기회
세 가지 난제 해결해야
‘미래가 있는 나라’될 수

아직 음력으로는 해가 바뀌지 않았지만 새해가 토끼(癸卯)의 해이다 보니 ‘교토삼굴(狡兎三窟)’ 고사가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은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왕족 맹상군(孟嘗君)의 가신(家臣) 풍환(馮驩)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列傳)의 끝에 풍환의 얘기를 꽤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웬만한 재상(宰相)보다 분량이 길다.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판 ‘세 개의 굴’은 아래와 같다.

맹상군의 영지이던 설(薛) 땅에 세금을 걷으러 가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납세를 면제해 준다. 어차피 못 받을 돈이라면 민심이라도 얻자는 뜻이다. 이후 맹상군이 어려운 처지가 돼 영지로 돌아갔을 때 백성들은 그를 강력하게 지지해 재기의 바탕이 된다.

맹상군이 한때 모함으로 재상직에서 해임되자 풍환은 이웃 위(魏)나라 왕에게 그를 중용해 제나라를 치라고 부추긴다. 제나라 왕에게는 맹상군이 위나라로 가면 위협이 되니 막으라고 경고한다. 제나라는 맹상군을 재상으로 복귀시킨다.

맹상군이 다시 재상이 되자 실각 이후 떠난 가신들이 다시 돌아왔다. 맹상군이 이들을 탓하려 하자 풍환은 ‘부귀해지면 인재가 모이고 가난하고 어렵게 되면 친구도 줄어든다(富貴多士 貧賎寡友)’며 이들을 잘 대해주라고 한다. 맹상군은 인심을 더 크게 얻는다.

풍환이 세 번째 굴에 대해 팽상군에게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말이 “무릇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 있고 원래 그런 것이 있다(物有必至 事有固然)”이다.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본성 모두를 제대로 꿰뚫어 본 지혜라 아니할 수 없다.

2023년 우리 경제에 풍환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형태의 위험들이 즐비하다. 뿌리가 깊은 구조적 문제들이다. 증시가 반등한다고 해도 이들 난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해 전고점 회복은 요원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 고금리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이들이 늘고 있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까지 위태롭다. 도덕적 해이는 막아야겠지만 가계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다.

미·중 간 대립은 이미 경제전쟁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 어차피 모든 나라에 중요한 것은 자국의 이익이다. 미국에 중요하고 중국에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한다.

세계화보다 자국화가 대세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자율주행으로 변화하듯 산업의 근본구조가 변하고 있다. 설비도 고용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산업의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하나같이 묘수가 필요한 난제(難題)다. 개인이나 기업 차원을 넘어 온 나라가 나서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고통분담과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작은 이익에 사로잡히면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조(趙)나라 평양군(平陽君)의 이령지혼(利令智昏) 경계를 떠올릴 때다.

금리가 상승하면 부실위험도 커진다. 은행 등 금융회사는 금리가 오를수록 은행들은 가산금리도 높인다. 여기에는 금융사의 이익목표도 반영한다. 이익은 남겨야겠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금융회사를 ‘금융기관’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공적 기능이 내재된 때문이다. 철저한 감독과 단속이 필요하다.

방역봉쇄 탓에 지난해 중국은 밖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달러 강세로 미국의 목소리만 컸다. 미국이 크지만 중국도 그에 버금간다. 한쪽만 선택해서는 우리 경제가 지금의 규모와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을 각자 만족시킬 양원적(兩元的) 대응전략이 시급하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던 제조업이 바뀌고 있다. 공급망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원확보는 공급망 안정의 핵심이 되고 있다. 고용 재배치를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중국에 쏠린 글로벌 생산망을 다원화해야 한다. 주요 산업 자원의 조달처도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변화의 흐름에 잘 대응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변화는 기회이자 위기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구감소 국면에 접어든 이유도 젊은 세대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사고로 21세기를 사는 어리석음(愚)을 경계하자.

kyhong@heraldcorp.com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