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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상의 현장에서] 전세사기, 사후약방문은 이제 그만

3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결혼을 앞두고 그간 자신이 모아온 7000만원과 부모님께 4000만원을 빌려 인천시 미추홀구 빌라 전세계약을 맺었다. 3000만원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어 불안하긴 했지만 보증금 1억 1000만원에 주변 시세와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자신의 집이 경매에 넘어가 1억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A씨는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증보험에도 가입해놓지 않았고, 낙찰자는 거주를 원하면 낙찰가보다 더 비싼 값에 집을 사가라고 제안하지만 지난해 집주인에 지급한 보증금이 A씨의 전재산이다. A씨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경제적 살인을 당했다”고 표현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와 가해자의 소식이 뉴스를 가득 채운다. 정부는 피해자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법률 상담이나 금융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고, 경찰은 전세 사기 전담태스크포스를 꾸려 수사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다.

전세 사기는 최근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항상 사회적 문제가 되곤 했다. 집값이 오를 때 임차인이 지불한 임대차보증금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하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주택소유권을 취득한 일당들이 집값이 내리자 ‘배째라’고 나오는 식이다.

지난 정부는 임차인 보호라는 취지하에 임대차보호법 등 수많은 정책을 내놨지만 실상 보증금 전부 를 잃을 수 있는 전세 사기에 대한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회 역시 손놓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매 한가지다.

전세금 변제를 장기간 방기한 ‘나쁜 임대인’ 인적 사항을 공개하도록 하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신용정보보호법으로 인해 논의조차 미뤄왔다.

이제 와서 국회는 국세징수법을 개정해 세입자가 계약 체결 후 계약서를 첨부하면 임대인의 동의 없이 국세·지방세 체납 정보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문가들은 확인시기와 세무서를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계약 체결 후에 해당 물건의 세금 체납정보 등을 확인해봤자 계약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에 등기부등본에 임대인의 국세, 지방세 체납정보를 기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공인중개사가 임대차계약 전 임대인에게 확정일자, 차임, 보증금, 담보대출, 선순위 관계의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손쉽게 임차인들의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우리 나라처럼 전세제도가 보편화된 국가에서 전세 사기는 대표적인 악성 민생범죄로 꼽힌다. 부동산경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불황이 불가피하다.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 마련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에 있다. 더는 전세 사기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게 할 정부의 대규모 ‘정책 공사’가 절실한 시점이다.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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