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동향의 바로미터인 삼성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비상경영에, 긴급회의에 일상이 숨가쁘다. ‘전운이 감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위기상황이다. ‘내년 경기침체’는 누구나 받아들이는, 예고된 미래임에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현장에서 뛰는 기업이, 그것도 삼성이 저렇게 허리띠를 졸라맨다니, 남 얘기 같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선제적으로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비상경영 체제 전환’이라는 공지문을 사내 연결망에 올려 공식화했다. 해외출장, 소모품비용 등까지 줄이라는 ‘깨알 지시’였다. 그만큼 이번 위기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더니 대응 강도를 더 높였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 사장단이 지난 26일 긴급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모임은 지난 2017년 2월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 폐지 이후 약 6년 만이다. 현재의 위기상황 대응과 미래먹거리 탐색이 주요 의제였는데 위기상황은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 추락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반도체 겨울’ ‘반도체 빙하기’는 벌써부터 예고돼왔다. 글로벌 수요 침체가 본격화하면서다. 주식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하락세를 지속한 후 ‘5만전자’ ‘7만닉스’에 머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 증권가에선 삼성 반도체 적자 전환 전망까지 나왔다. 이게 현실화한다면 2009년 1분기(7052억원 적자) 이래 13년 만의 적자 전환이다. 내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 영업이익과 관련해 최근 대신증권은 1분기 695억원 적자, 2분기 674억원 적자를, BNK투자증권은 1분기 2900억원 적자를 예상했다. 또 메모리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는 더 어려워 올 4분기부터 적자를 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삼성 반도체의 적자 전환 전망에 대해 일부에서는 과도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가능성이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불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삼성의 강도 높은 위기대응 행보는 여타 그룹과 대비돼 더 도드라진다. SK, LG 등 다른 대기업은 올해 종무식을 생략한 채 12월 마지막 주를 장기 휴가기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서다.
정부와 국회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과 3인4각으로 뛰어야 할 그들이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다. 세 감면 흉내만 낸 반쪽짜리 ‘K-칩스법(반도체특별법)’ 같은 행태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와 민간이 한 몸이 돼 기업 중심, 국민 중심으로 대응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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