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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자연의 현장에서] 2년만에 또...다시 죄인이 된 집주인

“전세 가격이 치솟을 때는 5%만 올리라더니 가격이 떨어지니 갑자기 나간다고 돈을 달랍니다. ‘상생’은 왜 임대인만 해야 하나요?”(세입자와 전세 분쟁을 겪은 집주인 A씨)

연일 역대 최대의 하락폭을 기록 중인 전세 시장이 아노미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전세 가격 하락으로 보증금을 내주기도 벅찬 가운데 개정 임대차보호법이 집주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어서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전세시장 하락기에 개정 임대차 보호법이 전세 관련분쟁을 키우는 괴물이 되고 있다. 최근 임대차 시장에서는 세입자들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임대차보호법 조항을 들이 밀며 집주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3개월 후에 나갈 테니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다. 주변 전세가격이 더 싸지자 일명 ‘갈아타기’를 위해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이런 요구가 가능한 건, 2020년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때문이다. 법안에 따르면 묵시적 동의에 의한 계약 연장뿐 아니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 건도 세입자가 언제든 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다.

이때 보증금을 돌려주고 새 세입자를 구하는 의무 모두가 집주인에게 주어진다. 중개 수수료도 집주인이 부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집주인은 계약갱신청구권으로 5% 내로만 인상해야 하는 동시에 2년의 계약기간 동안 전세가에 상응하는 현금을 언제든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5% 계약갱신청구권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집주인은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야 할 처지라는 말이다. 물론 전세퇴거대출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고공행진하는 대출금리와 대출 규제로 한도가 제한돼 이 역시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또 다른 세입자를 구하면 될 일이지만 이 또한 거래가 마른 시기에 대안이 되지 못한다.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지만 집주인 보호장치는 전무하다. 주무부처인 국토부 관계자조차 임대차보호법 자체가 임차인 보호를 위한 법이라 설명한다. 이 말대로라면 계약서는 왜 쓰며 계약기간은 왜 있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주변을 돌아보자. ‘집 있으면 부자’란 말도 이제는 고루한 표현이다. ‘세입자는 가난하고 집주인은 부자’ 또한 단순한 명제가 아니게된 지 오래다. 집은 소유했으나 가난한 ‘하우스푸어’와 고가의 전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렌트 리치’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전세제도로 집주인은 필요한 돈을 세입자로부터 융통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입자는 살 곳을 마련한다. 세입자의 권리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임대차보호법은 개정을 거듭하며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은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임차인 보호가 임대인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곤란하다. 전세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언제 상환 요구가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집주인이 살아야 하는 건 또 다른 법의 횡포다. 임대인의 한숨과 비명이 곳곳에서 들리지만 현행 임대차법 앞에서 소음조차도 되지 못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법안의 재개정이 절실하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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