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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년 만에 눈치 안 보고 치료받을 수 있게 된 우울증

보건복지부가 정신과로 한정됐던 항우울제 처방 범위를 이달부터 대폭 확대한 것은 우울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규제 완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규제 해제 차원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앞으로는 내과, 가정의학과 등 어떤 의사를 방문해도 우울증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치료 접근성이 20배 이상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동안 우울증 치료는 정신과의 전문영역으로 치부돼왔다. 비정신과 의사들이 항우울제를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건강보험 급여제한)가 지난 2002년 3월부터 20년간이나 이어져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제다.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환자들에겐 항우울제 처방이 일종의 주홍글씨처럼 작용했다. 우울증약 좀 먹었다고 정신병 환자로 취급받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과 진료 이력이나 진단기록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걱정해 치료를 하지 않고 병을 키우는 사례가 빈발했다. 정신과 진료기록은 철저히 비밀이 유지되고 병원 방문 초기에는 정신과 진단코드 대신 보건일반상담코드를 허용하는 등의 보완책도 시행됐지만 환자들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릴 만큼 현대인들에게 일반화된 게 우울증이다.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우울증은 전 세계 장애 원인 1위이며,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번아웃증후군이 유독 많을 만큼 각종 스트레스로 정신적 피로감이 큰 한국 사회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울증 유병률은 OECD 1위인데 치료율은 꼴찌”라는 게 대한우울자살예방학회의 주장이다. 그들이 보건복지부의 이번 조치를 크게 환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수면장애와 의욕저하, 무기력증 등은 우울증의 시초다. 누구나 쉽게 겪는 일들이다. 일정 시기만 지나면 자연치유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조기에 치료하면 무난하게 회복된다. 하지만 자살이란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는 병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신과 세계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고에 갇혀 의지력이 약해지고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삶의 의욕을 잃기 때문이다.

이번 규제 해제가 우울증 치료율을 OECD 최저에서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자살률도 낮추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비정신과 의사들이 진료 대상 환자 확대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얘기다. 자살 사망자의 75%는 자살 1개월 전까지도 여러 가지 신체 증상으로 병·의원을 찾는다. 모든 의사가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만한 역량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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