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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보편적 권리로서의 디지털

MIT 미디어랩의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그의 책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천명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은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됐다. 온라인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동영상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감상한다.

정보통신 서비스의 발전은 이러한 디지털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메타버스의 등장은 더욱 고도화되고 개별화된 디지털 서비스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빨라질 것이고 디지털은 더욱 광범위하게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의 혜택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서비스가 고도화되고 확대되더라도 이에 대한 접근과 이용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택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못하는 노년층이 택시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선천적·후천적 장애로 인해 디지털 서비스 이용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디지털 서비스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에 경제적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도 적지 않다.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이해·활용 습득 기회 자체를 얻기 어려운 이들도 존재한다.

디지털이 우리의 일상에 주어진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디지털 접근과 이용 문제 역시 사소한 불편이나 제약 정도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디지털의 영향력은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서비스가 오직 디지털의 형태로 제공되고, 이러한 경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이용이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이고, 누구라도 이러한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방지하고, 디지털에 대한 접근을 보장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디지털 접근·이용의 격차 확대는 사회집단 간의 가치관과 인식의 차이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 9월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을 발표하며 디지털 활용을 보편적 권리로 선언하는, 이른바 ‘디지털 권리장전’을 수립하고 디지털 접근권과 리터러시를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밝힌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전 국민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디지털배움터’를 전국에 구축하고, 이동통신 요금제 다양화와 해상통신망 구축 등에 나선다. 이를 통해서 디지털 접근과 선택권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취약계층을 위한 디지털 보조기기나 장애인·고령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 인터페이스를 보급하는 계획 등도 포함돼 있다.

기존의 법령에도 이러한 디지털 접근권에 관한 내용들이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및 지능정보화 기본법 등은 장애인과 고령자에 대한 정보통신기기 등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은 디지털 서비스의 접근성 보장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내용들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많은 온라인 서비스가 이러한 접근성 조치 사항들에 관심을 두고 이를 서비스에 구현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웹 접근성 인증을 받은 사업자들도 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정보통신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이러한 접근성 보장에 관한 내용들은 점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하나로 강조되고 관심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이 필수재인 시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소수 이용자의 혜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으로 향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술 자체의 고도화뿐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의 접근과 이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노태영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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