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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빛이 있는 세상, 또다른 광복절을 꿈꾸며

오는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1926년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날을 기리는 것이다.

현재 국내의 등록 시각장애인 수는 약 25만명 남짓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노화와 관련 있는 녹내장, 당뇨망막병증, 황반변성 등의 3대 실명질환을 앓는 이가 2019년 150만명을 넘어 빠르게 늘고 있다. 주요 노인성 안질환인 황반변성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20명 중 1명꼴로 빈번한 데다 상당수가 완전한 시력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손의 촉각을 이용해 글자와 기호를 읽는 점자는 늘어나는 시각장애인의 시력 상실을 보완하는 중요한 도구다. 세계적으로 점자 인식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개발이 한창이다. 우리나라 역시 2021년 점자법 시행과 더불어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서울 강남구에 디지털점자 키오스크가 설치되는 등 관련 기술의 개발이 빨라지고 있다.

점자라는 간접적인 시력 보완 수단을 넘어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시력 상실을 ‘인공 눈’으로 대체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로 시각을 살리는 치료방법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인공 망막기술 중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기술은 미국의 ‘아구스(Argus )II’를 꼽을 수 있다. 미국 FDA 사용 승인을 획득한 아구스II는 아주 미세한 60개의 전극이 연결된 마이크로칩을 환자의 망막에 이식해 약하게나마 형태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극 해상도가 떨어지고 수술비도 매우 비싸 실질적인 사용이 어렵다.

현재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평가받는 방법은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으로, 주로 광수용기 세포 또는 망막색소상피 세포를 배양해 분화세포가 기능을 잃은 망막세포를 대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필요한 곳에 분화를 시킬 수 없는 불특정성과 분화 후 기존 세포와의 신경망 회복 문제, 면역 거부 반응과 암 발생 가능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각 복원 연구는 인간 세포에서 채취한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를 활용한 연구가 대표적인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진행 중이다. 해당 연구는 빛을 받아들이는 광수용체 세포를 인공으로 망막에 발현시켜 명암으로 색 구분을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 현재 살아 있는 쥐를 이용해 실제 시각 복원 여부를 검증 중이며 향후 영장류로도 검증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또한 최종적인 성공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시간 동안 점자는 빛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돼주었다. 시력 상실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과학기술적 접근법은 기술의 성숙도, 안정성 등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점자의 날’에 과학자인 필자는 점자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꿔 본다.

시각장애인들이 빛을 다시 되찾는 또 다른 의미의 광복절(光復節)을 맞이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박두성 선생이 궁극적으로 바라던 바가 아니었을까?

김재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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