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화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공감만화가 마스다 미리의 유명한 ‘수짱’ 시리즈 가운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만화가 있다.
30대 중반의 수짱은 카페팀장으로 지금 일에 보람과 만족을 느끼지만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데 할머니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이 앞선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노후자금이다. 당시 3900만원 정도 저금해둔 돈이 있지만 애매한 액수다. 요가학원에 등록하려다가 학원비 1만엔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걸로 노후적금을 드는 게 낫지 않을까? 구차한 느낌에 얼른 학원 등록을 해버린다.
수짱은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모의 노후를 걱정하기도 한다. 언젠가 수발을 들어야 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해 남편의 부모까지 책임질 각오는 없다. 양가 부모를 수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턱 막힌다. 지금의 느긋한 자유를 놓치는 것도 슬프다. 역시 결혼은 어려운 일이다.
평범한 싱글 직장여성의 일상과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 수짱 시리즈는 국내에선 ‘싱글의 일상’이란 키워드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게 10년 전 일이다.
최근 일본의 화두는 솔로사회다. 통계에 따르면 2040년 독신자 비율은 47%, 64세 이하 유배우자 비율은 31%를 차지한다. 혼자 사는 게 당연시되고 결혼하는 쪽이 소수파가 되는 셈이다.
일본 독신 연구의 일인자 아라카와 가즈히사와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가 ‘솔로사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주제로 대담한 책을 보면, 도쿄에 사는 직장여성들은 이미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결혼의 장점이 없다는 얘기다. 혼자서도 즐겁고 애초에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여기는 ‘진짜 솔로’도 20%에 달한다.
결혼도 일종의 경제활동인데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니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으면 하는 취미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에서의 매칭 때문에 놀이 혹은 취미로서의 결혼, 오락으로서의 결혼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인구 면에서 빠르게 일본을 뒤쫓고 있는 한국 역시 결혼관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대신 연애 감정을 소비할 수 있는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환승연애’ ‘돌싱글즈’ ‘나는솔로’ 등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도 관련 글이 많다. 서른 넘으니 연애가 귀찮아진다거나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진다는 얘기가 공감을 얻고 있다. 결혼하고 싶지만 상대가 없으면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식과 만나고 싶은데 어렵다거나 그래도 친구들 결혼하고 애낳는 거 보면 후회할지 모른다는 식이 부딪히고 있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우리는 2050년이면 다섯 집 중 두 집꼴로 가족 없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된다.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비중은 2020년 29.3%에서 2050년 17.1%로 축소되고, 부부끼리만 사는 집의 비율도 20%를 넘어서 핵가족마저 붕괴 위기다.
인구사회학적으로 우리보다 10~20년은 앞선다는 일본 사회의 과거를 보면 우리의 현재가, 일본의 현재를 보면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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