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 사태 5일만인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보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안 돼.” 카카오의 남궁훈 대표는 짐 콜린스의 책 한 귀절을 주문처럼 외고 있었다. “출범 당시 목표와 가치를 잊었다는 반성의 계기가 됐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저명한 경영그루의 베스트셀러(강한 기업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였으니 한번쯤 짚고 넘어가는 것도 괜챦겠다. 책 대로라면 카카오는 벌써 몰락의 길로 한참 들어섰다. 1단계(성공과 오만)와 2단계(점점 더 추구)를 넘어선지는 오래전이다. 증거는 많다. 다 아는 얘기다.
카카오는 “편하게 돈 걱정없이 소통하는 디지털 세상을 만들겠다”며 출발했다. ‘혁신의 상징’이란 엄청난 호응속에 이용자 4000만명을 넘는 국민기업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눈꼴 시린 기업이다.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우고 수익성만 쫒아다닌다. 134개나 되는 계열사는 골목상권을 위협한다. 쪼개기 상장으로 모기업 가치를 떨어뜨린 것도 모자라 상장 한달만에 900억원의 스톡옵션을 팔아치운 먹튀 경영진도 여럿이다.
거기서도 더 나갔다. 몰락의 3단계는 위험 부정이다. 카카오는 이제 ‘탐욕의 화신’으로 불리지만 애써 못들은 체 한다. 더한 건 시스템 리스크를 무시한 일이다. 20여분에서 4시간까지 이제껏 드러난 장애는 수도 없다. 최근 5년간 발생한 것만 20건이다. 대형사고 전에 작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수많은 미봉의 결과가 이번에 제대로 터진 먹통사태다.
아직 마지막 5단계(항복)는 아니라는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봐야 지푸라기 잡기 4단계다. 마치 미리 본 듯 짐 콜린스는 말한다. “몰락 4단계에 들어선 기업의 리더는 대개 최초의 성공 원칙을 되짚으며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무서운 건 그 다음이다. “하지만 대개 실패한다.” 소리지를 뻔한 이유다.
꼭 책대로 진행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 맞는 것도 아니다. 틀리길 바란다. 희망도 보인다. 기자회견에서 보인 두 CEO의 자세가 그렇다. 그들은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변명없이 ‘인정’했고 확실히 ‘반성’했다. 사고의 책임소재보다 재발방지 대책에 방점을 뒀다. 불만으로 이용자수가 줄었느냐는 질문에 “그건 관심사가 아니다.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게 중요하다”던 홍은택 대표의 답변은 신선했다. 망설임없이 “무료 이용자의 피해까지 보상하겠다”는 대목에선 초심도 느껴진다. 책임지고 사퇴할 남궁훈 대표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업계 전반에 교훈이 될만한 기준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도 꽤나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적어도 출구전략의 첫 단추는 잘 끼웠다. 이번 먹통 사태는 카카오에겐 어쩌면 ‘축복’이다. 치료 불가능한 말기암이 되기전에 꽤나 아픈 위경련쯤으로 몰락의 위기를 넘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후대책이 카카오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때까지는 끝나도 끝난게 아니다.
플랫폼 대표기업의 리질리언스(충격회복력)를 제대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은 카카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