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있어야 아이의 삶도 있죠.”
얼마 전 아이 등원길에 마주치면서 알게 된 학부모와의 대화 중에 나온 이야기다. 그녀는 내가 만났던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경험할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본인이 직접 느껴보고자 30세가 넘은 나이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는 대학원 재학 중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한동안 신선한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자란 그녀는 처음 와본 타국에서 교육에 대해 몸소 이해가 필요했고, 최소한 고등학교부터는 다녀봐야 아이에게 조언해줄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입학했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중에 무난하게 대학을 졸업했고, 현재는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많이 반짝였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한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열정만 있다고 또는 시간적·자금적 여유만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의 장래를 위해, 아이의 더 낳은 입시를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더더군다나 이해되지를 않았다. 소위 ‘헬리콥터 맘’일지라도 본인의 시간을 다시 한번 고등학교 공부 및 대학 입시에 쓰고자 하는 부모는 결코 많지 않다.
며칠 후 그녀에게 왜 고등학교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지에 대해 조금은 집요할 정도로 내 궁금증 해소를 위한 질문들을 퍼부었다.
그녀의 대답은 매우 단순했다. “내 삶이 있어야 아이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이를 낳고 그전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타국에서 키우기 위해 몸소 부딪치면서 교육 시스템을 체험해보고 싶은 것은 사실 두 번째 이유고요, 공부를 할 거면 고등학교부터 다니자 생각했지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바로 실행했습니다. 학교의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학교에 다녀온 후 내 아이와 만나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을 안겨줬고 우리 가족은 매우 행복한 상황에서 지금도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나의 행복을 추구한 결과, 육아를 통한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모린(Maureen P.J)의 연구에 따르면 ‘내가 충분하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인 경우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양육에서 근무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연구였으나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단순한 명제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나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다. 위의 사례를 일반화하기에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조금은 명확해지는 것 같다. 아이가 다닐 학원과 아이에게 무엇을 더 줄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는 나 자신만을 위해 마음껏 이기적일 필요도 있다는, 가끔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단순한 사실 말이다. 내가 건강해야 내 아이도 건강하다.
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