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도 나쁘지만 남혐도 나빠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2008년부터 무술 지도와 여성호신술 수업을 함께하며 ‘우리나라 여성들이 큰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구나’ 하고 느꼈던 일이 지금까지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2012년 우위안춘 살인 사건이고 또 하나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여성들에게 큰 충격과 심적 고통 그리고 공포를 안겼다.
그리고 얼마 전 신당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전 두 사건이 집 근처를 오가다 혹은 번화가에서도 갑자기 낯선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키웠다면,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직장 동료였으며 3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스토킹의 연장선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 ‘언제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를 다시 한 번 심어줬다. 무엇보다 피해 여성이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자신을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의무와 법적 조치를 다 했음에도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가해자가 불법 촬영으로 시작해 스토킹을 일삼는 동안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 가해자는 직위해제 후에도 여전히 직장 내부망 접근이 가능해 피해자의 근무정보를 알 수 있었고, 수사기관은 스토킹처벌법에 근거한 직권으로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법원은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같은 수사기관 및 법원의 미온한 대처가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사법기관에서 피해여성이 느꼈을 공포와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에 좀 더 공감하고 적극 조치를 했더라면 피해자를 살릴 수 있었다. 사법기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좀 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에 공감하고 실제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막상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그런 실체적 안전을 추구하기 위한 것보다는 여성혐오범죄 여부를 따지는 등 성별 갈등 이슈를 부추기기만 하는 쪽이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예를 들면 스토킹 범죄는 여성도 많이 한다거나 지하철, 길거리 등에서 남성에게 주취폭력을 행사한 여성에 대한 뉴스를 끌고 와 남자도 여자에게 맞거나 죽는다는 식의 피장파장 논리가 자주 보인다.
하지만 ‘남자만 ○○하냐, 여자도 ○○한다’는 따위의 논지로는 양쪽 어디든 범죄를 조금도 줄일 수 없다. 물론 여성도 성차별을 포함해 나쁜 짓을 한다. 아마 정말로 세상이 성평등해지는 날이 온다면 강력범죄나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성비도 5대 5에 가까워질 것이다. 폭력과 차별은 결국 그것을 자행해도 될 만한 힘이 있어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남자 8명과 여자 2명이 여자 7명과 남자 3명을 죽이는 세상이고, 그것이 남자 5명과 여자 5명이 여자 5명과 남자 5명을 죽이는 세상이 되기보다는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 남자 1명이나 여자 1명을 죽이는 정도의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어느 쪽이 덜 죽이고 어느 쪽이 덜 죽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애써야 할지도 자명하지 않은가.
김기태 A.S.A.P. 호신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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