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000m, 극한과 불모의 땅, 아르헨티나 살타주(州) 옴브레무에르토(Hombre muerto)는 ‘죽은 남자’라는 뜻이지만 최근 우리 기업이 이곳을 축복의 땅으로 바꿔놓았다. 바로 여기서 ‘하얀 석유’ 리튬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나라 기업은 지하 120m 탐사 후 포기했지만 기술과 끈기를 지닌 우리 기업은 600m를 파내려가 거대 염호를 발견했다.
오는 2024년부터 연간 전기차 250만대에 필요한 리튬이 생산된다고 한다. 배터리산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에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
머나먼 중남미는 사실 한국 경제 성공사의 전주곡과도 같은 곳이었다. 우리에게 마이카 시대를 열어준 ‘포니’의 첫 수출은 해발 2700m 고지인 에콰도르였고, 삼성 컬러TV의 첫 수출국가는 파나마였다. 한국은 자동차와 가전, IT 수출로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해냈다. 그 성공의 시작은 미국이 아닌 중남미였다.
한편 중남미는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의 시험장이기도 했다. 1997년 금융위기 이후 대외신인도 개선과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해 FTA 체결을 검토했다. 그 대상으로 3, 4개 국가가 거론됐지만 우리는 칠레를 택했다.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서로 계절이 상반되고 산업의 구조 역시 달라 자유무역이 상호 보완되는 이익을 창출하리라 믿었다. 또 서로를 각각 중남미와 동아시아 시장의 진출 거점으로 봤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지리적으로 가장 먼 한국이 칠레의 4위 수출시장이 될 정도로 한·칠레 FTA는 모범적 FTA로 평가받고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와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외환위기 이후 자신감을 갖고 공세적 FTA 정책으로 전환하게 해준 계기가 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달 9일에서 17일까지 칠레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를 순방한다. 올해는 중남미 15개국과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로, 한 총리의 순방은 과거 60년의 우정을 확인하며, 미래 협력을 다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강대국의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빚은 자원과 식량의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세계의 광산이자 곳간인 중남미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식량뿐만 아니라 미래 주력 산업의 원재료인 리튬마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중남미와의 관계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더구나 무한한 잠재력의 대륙 중남미는 최근 팬데믹을 계기로 전자상거래가 확산됐고, 그 결과 디지털 혁신을 통한 성장 가능성도 보였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중남미 대부분 국가는 그린 혁신의 길을 가려고 한다. 인구 6.5억명, GDP 5조5000억달러의 대륙이 혁신의 길을 걷는다면 세계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갖게 되는 셈이다.
중남미가 가려는 길을 한국이 함께하고자 한다. 한·중남미 수교 60주년은 그러한 다짐을 확인하는 시점이며, 한 국무총리의 남미 순방을 통해 그러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디지털, 그린수소, 해양수산, 농업혁신, 항공우주 분야에서 중남미와의 새로운 협력뿐만 아니라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에 대한 지지 역시 기대해본다.
조현동 외교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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