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엔 작은 희망도 크게 보인다. 더 나빠지지 않으면 전환의 변곡점으로 오해하기 쉽다. 9월 물가가 딱 그렇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6%다. 8월의 5.7%보다 0.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지난 7월 6.3% 이후 두 달 연속 상승세가 꺾인 모습이다. 이것만 보면 확연한 둔화다.
문제는 정점을 찍었는지다. 그랬을 가능성이 작지 않은 건 사실이다. 태풍이 몰아쳐 배추 한 포기에 1만원을 넘기고 전기·가스요금 인상분까지 반영됐는데도 물가가 횡보했다. 게다가 연중 최성수기 중 하나인 추석 명절도 포함된 9월이었다. 그런데도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이만저만 다행이 아니다.
그럼에도 물가가 횡보세를 계속하거나 심지어 정점에서 내려올 것으로 확신하긴 어렵다. 아직도 너무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부분 상방 요인이다. 안심하긴 이르다. 속단은 금물이다.
가장 우려되는 게 국제유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는 언제나 대규모 감산을 얘기한다. 10월 정례회의에선 실제로 감산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벌써 국제유가는 오르는 방향으로 꿈틀댄다. 지금은 배럴당 80달러대이지만 언제 90달러를 넘어 100달러에 육박할지 모른다. 그건 공산품 대부분의 가격에 순차적인 영향을 미치고 특히 11월 예정된 전기료 인상에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환율이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선 그 영향이 더욱 커진다.
우린 대부분 1년 전과 비교하는 물가 상승률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고물가 시대엔 지난달과의 비교가 점점 중요해진다. 지난 8월엔 전월비 상승률이 마이너스(-0.1%)였다. 물론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격이 1년 전보다는 올랐지만 한 달 전과는 비슷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한 달도 안 돼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아직 물가 정점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고물가는 고통이다. 서민에겐 더하다.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커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품목들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9월에도 여전히 6.5% 상승률이다. 심지어 신선식품은 12.8%다. 밥상머리 생활고는 전체 물가 상승률을 한참 웃돈다. 5% 물가 상승은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에겐 250만원의 감봉과 같다. 하루빨리 물가를 잡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5%를 넘는 고물가 상황에선 횡보든, 정점이든 크게 중요할 것도 없다. 그 자체로 안정 물가선 2%의 2배 이상이다. 물가잡기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