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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묘생 그리고 인생

우리집 고양이 ‘크림이’가 보이질 않는다. 수컷이라 툭하면 집 밖으로 싸돌아다니다가 들어오곤 했다. 지난해 발정기에 수컷 구실을 해보겠다고 집을 나간 뒤 한 달 만에 돌아온 적도 있다. 아내와 두 딸은 죽었다고 여긴 그의 생환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집 나간 지 벌써 두 달 째다. 아마도 우리 가족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다한 듯싶다. 2017년 늦여름에 갓 태어난 새끼를 이웃에서 데려왔으니 우리 가족과 동행한 시간은 5년쯤 된다.

흰 고양이 ‘크림이’는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가끔 “너는 쥐와 뱀을 잡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필자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는 심성이 착한 좋은 고양이였다. 다만 집 안이 아닌 밖에서 키우는 데다 덩치가 작은 소형묘이다 보니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골고양이 세계에서 언제나 약자였다. 수시로 침입하는 들고양이의 폭력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우리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평안도 누렸지만 고난 또한 적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야생 들고양이들이 심한 영역 다툼을 벌인다. 천적이 거의 없다 보니 어찌 보면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같은 고양잇과인 호랑이와 사자처럼 영역 다툼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 서로 싸우다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덩치가 크고 사나운 들고양이라도 1~2년 정도 지나면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명이 짧다.

집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집고양이들은 이들의 침입과 폭력에 맞서야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묘생이다. 들고양이들은 본능적인 영역 다툼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호시탐탐 집고양이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린다. 크림이가 새끼 티를 벗고 막 성묘가 되었을 때다. 비슷한 덩치에 같은 또래의 수컷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친구하자”며 슬며시 접근해왔다. 순진한 ‘크림이’는 뜻밖의 동무 출현에 반색했다. 아내도 “혼자서는 외로운데 친구가 생겨 다행”이라면서 불청객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필자는 찜찜했다. 놈의 번득이는 눈빛과 표정에서 우정 아닌 탐욕을 보았기에....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동물가족으로 편입된 검은고양이는 서서히 그 본색을 드러냈다. 둘이서 함께 먹던 밥그릇을 독식하거나 함께 쓰던 집을 독차지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별도의 밥그릇과 집을 마련해주었는데도 친구의 것을 빼앗는 횡포를 멈추지 않았다. 더는 두고볼 수 없어 못된 검은 고양이를 집에서 내쫓았다.

탐욕 때문에 다시 들고양이로 전락한 검은 고양이는 두어 달 후에 처참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 사이 다른 들고양이에게 호되게 당해 하반신 엉덩이 쪽 일부가 내려앉고 뒷다리는 아예 못써 앞다리로만 기어다녔다. 불구가 된 묘생이 너무 불쌍해 다시 거두어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포악한 들고양이의 공격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검은 고양이는 자취를 감췄다. 약 2년 전의 일이다.

좋은 고양이와 나쁜 고양이의 짧은 묘생에서 인생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천륜과 인륜을 저버린 각종 범죄가 하루가 멀다고 터져나오는 요즘, 혹시 검은 고양이의 묘생이 우리 인생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의 한 모습은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에 참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반추해본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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