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최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애초 여가부는 가족을 좁게 정의하는 법 조항을 삭제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방지 근거를 신설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4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도 포함됐다. 어떤 식으로든 출산 장려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부처인 여가부로서는 당연한 방향이었다. 그런데 돌연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결혼과 혈연, 입양에 의한 가족만 인정하는 현재의 법안을 비혼 동거 커플,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 가족까지 확대하자는 게 개정법안의 취지다. 법률적으로 좁은 가족 개념으로 인해 소득세 인적공제는 물론 건강보험, 가족수당 등 각종 보호·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구제하자는 것이다.
국제적 추세도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이다. 심각한 인구 문제에 당면한 국가들에선 더욱 그렇다. 혼인을 하지 않은 동거 커플의 자녀에게도 법적으로 동일한 보육지원을 하는 프랑스는 더 이상 출산율 걱정을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성에 의한 법적인 결합”이라고 정의한 결혼보호법에대해 지난 2013년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우리도 의식 수준은 비슷하게 왔다. 지난 2020년 여가부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는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통계청 인구총조사에선 연인이나 친구 등 비혼, 비친족 가구가 47만가구에 달하고 가족원은 100만명을 넘는다.
물론 가족범위의 확대가 일부다처제나 동성애 부부까지 모두 합법화시켜주는 도구로 활용되어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몰고 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젠더 악법’이라며 개정안 반대여론이 들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관습과 정서상 충분히 고려돼야 할 대목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국가 소멸론까지 나올 정도의 인구절벽 상황이다. 지난 2분기 0.75명의 출산율은 국가적 재앙이다. “집단 자살로 가는 사회같다”는 라가르도 유럽은행 총재의 발언은 하나도 지나칠 게 없는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여가부가 관련법의 현행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도 “(동거 가족 등) 국가의 보호·지원 대상을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대목은 마지막 희망을 갖게 한다. 출산과 관련된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는 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괄적인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시행령 등으로 구제 대상을 적시함으로써 출산율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