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기다렸는데 6개월이 지나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구청에서는 연기 기한이 다가온다고 하니 다시 연기 신청을 했는데, 주민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재건축 못 하고 돈만 날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큽니다.”
지난 1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판정을 받고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노원구의 한 노후 단지는 최근 구청에 2차 정밀안전진단을 다시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지난 4월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방침 소식에 사업에 속도를 냈는데 구체적인 규제 완화안이 나오지 않자 일정을 거듭 연기한 것이다. 재건축에 나선 추진위 관계자는 “지난 5월에는 ‘8월까지만 연기하자’고 했는데 막상 9월이 됐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며 “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라고 한탄했다.
대선 공약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를 내세웠던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연일 높아지고 있다. 물론 정권이 바뀌었다고 당장 정책을 180도 뒤집을 수는 없다. 정권 출범 당시 여전히 시장 상황이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에게 전달하는 과정과 소통의 방식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비롯해 안전진단 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의 약속이 내용 없이 구호만 반복되자 “지난 정부랑 다른 게 뭐냐”는 식의 비판이 거세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체가 없다.
노후 단지에 대한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 논의는 미뤄진 채 연구와 계획 수립이라는 발표만 이어졌다.
재초환 역시 최근 주요 단지 주민이 억대 통지서를 새로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오히려 발표 전 ‘부담금 산정시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재건축 조합들은 일제히 “우리가 원했던 규제 완화는 이게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공식 발표 전부터 여론이 악화된 모습이다.
1기 신도시의 경우, 기대했던 재건축 규제 완화는 미뤄진 채 4기 신도시를 통한 새로운 주택 공급계획이 언급됐다. 재건축 기대감이 꺼지며 부동산 하락폭이 커진 1기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는 “배신을 당했다”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급기야 다음달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며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상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부동산 정책 변경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메시지 전달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국토교통부의 말이 맞지만 발표 때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얘기하겠다’는 식이고 뒤늦게 내용이 나오면 이미 때는 지난 뒤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것 아니겠나”라며 “이미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개비판을 했다. 그런데도 상황이 아직까지 정리가 안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미 국민적 분노가 크지만 아직 정부에 기회가 있다. 정부의 고심이 시장 안정화와 국민적 갈등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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